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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거인], 김태용 감독, 최우식 / 양순주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거인], 김태용 감독, 최우식 / 양순주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장

그를 거인으로 만들고 규정해버린 것은 이 사회 구조가 아닌가를 성찰할 수 있는 안목이 동반되어야 한다.

15-1“세상에 학창시절에 너 같은 그런 상처 없는 사람들이 어디있냐?” 이는〈거인〉속 고등학교 교사가 영재를 향해 한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하기에 스스로 위로받기도 하고, 혹은 그것의 경중을 재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기도, 세상을 욕하기도 한다. 공통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의 얘기에 안도하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삶의 모습에 충격을 받거나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사연이라는 것이 실재하지만 누구나가 다 그 사연을 이해하고 그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실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삶과 이야기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누구나 다 사연과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그 세상을 경험한 자의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선생의 말에 상처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고등학생 영재의 단호하고도 반항적인 얼굴은 한편으로 안쓰럽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 아이러니로 포착되는 영재의 깊이 있는 표정에 사실상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녹아들어있다.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자신의 고립된 10대, 그 어린 날의 고독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김태용 감독은 박영재로 화(化)하여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히 적은 분량이지만, 〈똥파리〉(2009)의 양익준 감독이 친구 범태의 ‘아버지’로 등장한다는 것 또한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미 성장해버린 어른들이 정해놓은 답안지만이 정답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인〉은 영재의 사연과 아픔에 대한 기록이며, 그 시절을 지나온 자의 회고이자 고해이며 동시에 위로이다.

주인공 영재는 가족이 있음에도 스스로 가족을 져버리고 ‘이삭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룹홈(Gro up Home)은 가족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진 제도지만 그 속에서도 영재는 가정의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부모의 눈치를 보며 산다. 신학교에 가 신부가 되어 원장 부모에게 키워준 은혜를 보답하겠다는 영재는 모범생인척 가장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혈연으로 얽힌 그의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인 ‘이삭의 집’을 제 발로 찾아갔지만 그 가족 역시 온전한 안식처로 기능하지 못한다. 대안/대항 가족마저도 그를 낯선 존재로 인식하는 현실 속에서 영재는 끊임없이 가족 바깥에 부유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그의 삶은 언제나 불안 속에 놓여 있다. 어떤 가족에서도 떳떳한 구성원이 될 수 없는 영재는 이방인의(영화 제목인 ‘거인’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어른들이 돼서 책임들을 안 지려고 해 다들?” 평범한 세상에서 평범할 수 없는 영재의 불안한 삶은 어른들의 무책임에서 기인한다. 사지가 멀쩡하지만 돈을 벌지 않고 교회를 여러 군데 다니며 요행을 바라는 아빠와 그런 아빠 대신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큰이모네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엄마로 인해 그는 가족으로부터 방기된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부모를 떠나 그룹홈 생활을 하는 영재는 그 속에서도 거인처럼 홀로 우뚝 솟아있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양치를 할 때도, 거실에 앉아 식사를 할 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큰 키로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현실에 어울릴 수 없는 거인으로 형상화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손님을 맞이할 때, 원장 아빠가 화가 나 숟가락을 던졌을 때 걸레질을 하며 바닥을 기는 영재의 모습은 어떻게든 그 현실에 안착하기 위한 쪼그라든 자아에의 노출이다. 영재는 소국(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거인으로 상징되지만, 실상은 한없이 위축된 내면을 지닌 왜소한 거인이다. 클로즈업되어 나타나는 영재의 내면(얼굴)은 불안, 초조, 증오, 절망으로 표출되며 배우 최우식이 그 섬세한 감정들을 포착해 잘 전달해낸다.

Set me free, 〈거인〉의 영문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영재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를 내버려둬. 사회 혹은 가정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임에도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가혹한 삶에 내던져진 영재가 사회 혹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후원 물품을 몰래 훔쳐 팔기도 하고, 그 죄를 친구가 뒤집어써도 모른척 한다. 자기 하나만의 삶도 감당하기 버거운 영재에게 친부모는 중학생인 동생까지도 떠맡기려 하면서 현실의 무게는 가중된다. 가혹한 현실은 그마저도 쉬이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현실의 짓눌림은 한 시간 삼십여 분 동안 큰 굴곡 없이 진행되어 오던 영화에서 동생 민재를 데리고 이삭의 집으로 찾아온 아빠를 향한 영재의 분노로 폭발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영재는 과도로 자해를 시도한다.

“죽을 때까지 오지 마. 다신 오지 마.”라고 아빠를 향해 절규하던 영재와, 아빠와 동생이 떠나자 원장 아빠에게 곧바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용서를 구하는 영재의 모습은 왜소한 거인이라는 아이러니가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하이라이트이다. 세상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내쫓기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영재의 모습은 선악, 옳고 그름을 명백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빠를 향한 증오는 나를 좀 내버려두라고 소리치지만 살아가야할 사회가 나를 내칠까봐 전전긍긍하며 내버려지지 않게 발악할 수밖에 없다. 나약한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는 너무 빨리 현실을 알아버린, 해서 거인이 되어버린 10대 소년의 절규와 울음으로 드러나기에 더욱 가슴시리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영재의 잘못과 삶의 무게의 상관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5-3그 연관성은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돌아가고픈 바람을 간직한 영재의 모습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동생에 대한 책임마저 영재에게 전가하려는 친부모에게 “그럼 우린 어디로 돌아가?”라는 말을 내뱉는 영재가 가장 원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족의 품이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 고등학생 영재의 작은 바람이 여기에서 노출된다. 또한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드러나던 그가 단 한 번, 가장 편안한 웃음을 보인 장면은 과외 선생인 윤미의 엄마의 식당에서 세 사람이 식사를 할 때이다. 싹싹한 영재를 예뻐하며 살뜰하게 밥을 챙겨주는 윤미의 엄마와 윤미와의 투덜거림 속에서 가족의 따뜻함이라는 잠깐의 행복을 맛본다. 이삭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던 거인 영재와는 달리, 누추한 식당일지라도 도란도란 어울려 식사하는 이 장면 속에서도 영재의 작은 바람을 엿볼 수 있다.

“너 같이 살기 싫어서라도 나간다.”라는 말과 함께 이삭의 집에서 쫓겨난 범태는 사실 영재의 거울상이기도 하다. 범태를 통해 또 다른 영재의 모습을 반추해볼 수도 있다. 집이 싫어서 나온 영재와 생활하면서 영재를 상대로 또 다시 집을 나가는 연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러나 상통할 수밖에 없는 둘의 운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데리러 오겠다는 부모 때문에 나갈 날만 채우며 냉대를 받던 범태는 연기된 약속 기한에 속상해하다 나쁜 행동을 저지르고 쫓겨난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자 영재를 찾아와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범태 때문에 자신도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는 이유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한다. 현실의 불안함은 “같은 처지끼리 누가 누구보고 도와달라는 거야, 이 병신이.”라는 말처럼 극도의 이기적인 태도로 돌출된다. 범태는 영재의 도둑질을 목격하고 다시 한 번 협박하지만, 도리어 범태의 도둑질을 보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영재는 범태의 부탁을 처리해버린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영재는 거인이 되어버렸다. 그는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발버둥 쳤던 현실에서 내쫓겨 결국 밀양으로 가게 된다. 이삭의 집이라는 현실에 스며들지 못하고 조용히 집을 떠난 범태, 엄마와의 언쟁으로 큰이모집을 나온 영재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가서도 영재는 조용히 문을 닫고 떠난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손 내밀어 준 윤미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그럼에도 따뜻한 밥을 먹여 준 그녀에 대한 미안함은 결국 스스로 떠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다 찾아든 성당에서 범태와 마주친 영재는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다. 그간의 미안함을 사죄라도 하듯 영재는 울고 그 진심을 보고 용서라도 하듯 범태는 눈시울을 붉힌다. 또한 밀양으로 떠나기 전 동생 학교에 찾아가 자신의 옷과 신발을 물려주고 뒤돌아서면서 울음을 삼키는 영재의 모습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그를 거인으로 만들고 규정해버린 것은 이 사회 구조가 아닌가를 성찰할 수 있는 안목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는 다시 문을 닫고 떠난다. “출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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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거인 Set Me Free , 2014   네이버 영화정보 보기
개요 : 드라마 한국 108분 2014 .11.13 개봉
감독 : 김태용
출연 : 최우식(영재), 김수현(영재부), 강신철(원장부)
등급 : [국내]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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