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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이야기로 감독된 남자, 영화 <프리즌> 감독 나현

감옥 이야기로 감독된 남자, 영화 <프리즌> 감독 나현

따뜻한 봄의 어느 날 서울 홍대에서 영화감독 나현을 만났다.

img1722사회를 보려면 교도소를 보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으로 질서가 잘 잡혀 있으면 교도소가 잘 돌아가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교도소도 혼란스럽더라.
그 사회의 밑을 알 수 있는 곳이 교도소이다,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의 쉽지만은 않았던 도전.
마침내 그는 상식을 뒤엎는 스토리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가득 채운 영화 <프리즌>으로 관객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잘 만들어진 범죄액션영화라는 호평을 받으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얻고 있다. 따뜻한 봄의 어느 날 서울 홍대에서 영화감독 나현을 만났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장편 감독 데뷔를 축하한다. 시나리오 작가로는 오랜 기간 활동하다 연출로는 첫 도전이다.
데뷔작 <목포는 항구다>(각본) 개봉이 2004년도이고, 그 전에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0년부터라고 생각하면 17년이다. 뭐랄까. 느낌이 남다르다. 연출의 경우 한 번에 데뷔하지 못하고 두 편 정도 실패를 한 뒤에 데뷔를 한 거라 오래 걸리기도 했다. 2007년 <마당을 나온 암탉>(각본, 2011)을 준비할 때까지는 부산에 살면서 서울을 오가며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했다. 이후 연출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결국 이사를 했다. 세 번째 도전한 작품이 <프리즌>(2017)이다. 2년간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1년은 촬영 및 후반작업을 거쳐 개봉했으니 쉽지는 않았다. 해보니 훨씬 좋았다. 시나리오 작가도 의미 있는 작업이긴 하지만 혼자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연출은 난관이 있을 경우에 모든 스태프 및 배우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돌파할 수 있다. 때문에 외롭지 않아서 재미있었다.

<프리즌>의 소재가 신선하다. 범죄를 저지르고 이미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 죄수들이 밖으로 나가 완전범죄를 만들어낸다는 것.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평소에 교도소 영화를 좋아했다. 할리우드에서는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익숙한 소재이자 그 영화의 수도 많다.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교도소를 다루는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교도소를 소재로 하는 액션영화를 하고 싶었고, 고민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범죄의 소굴이 된 교도소! 그곳의 제왕이 된 익호. 한순간에 떠올라서 빨리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2주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하지만 고치는 데 2년이 걸렸다. (웃음) 정말 많이 고쳤다.

img1732교도소라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폐쇄적이지는 않다. 넘나드는 공간이지. 죄수들이 사복을 입고 나가 일을 처리하고 들어오고, 방어회도 먹고. (웃음)

프리프로덕션 때 자료조사나 취재에 있어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
교도소 취재가 쉽지 않았다. 공개되지 않는 가려진 공간이다. 대신 교도소 관련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필름, 방송, 신문 기사 등 각종 자료들을 총망라하여 이를 바탕으로 우리 영화에 필요한 설정들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작업해보자고 했다.

개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데도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다. 그중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당연히 익호와 유건, 주인공들이다. 이 두 사람이 영화의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익호는 영화 전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다. 한국영화 사상 이만큼 무시무시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과감하게 한석규 선배님을 캐스팅하게 됐다. 이런 역에 어울리는 다른 배우들을 쉽게 떠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그러한 캐릭터를 보여줄 때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석규 선배님의 경우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신뢰감을 주는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분명히 그의 내면에도 익호 같은 무시무시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결과는 200% 만족이었다. 김래원의 경우 연기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진중한 역할은 물론 코미디 등 연기력과 액션까지 다 되는 배우다. 유건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몸으로 고생하는 캐릭터이다.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김래원이 떠올랐다. 역시나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서 터보 엔진 같은 역할을 했다. 시나리오 작업 때 두 캐릭터에 공을 많이 들였다.

정웅인, 조재윤, 신성록, 이경영, 김성균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함께 하면서 시너지도 컸을 텐데.
주변 인물들 또한 반드시 연기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영화적이기 때문에 연기가 리얼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연기력이 받쳐주는 배우들이 있었기에 작품에 대한 해석을 잘 해냈고 순발력도 있었다. 신인 감독이 범할 수 있는 오류나 한계를 아주 잘 메워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배우들의 배역 몰입도가 영화의 완성도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SNS를 통해 후기들을 보니 기가 빨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 영화가 다 끝났는데도 사람들이 남아있었다거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도 다들 말도 없이 멍하게 있었다고 하더라. 그건 정말 배우들의 힘이다. 혼신의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거다.

img1759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실제 교도소였던 곳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리얼리티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익호가 머무는 원예실도 재밌다.
전라남도 장흥에 위치한 구 장흥교도소인데, 70년대에 만들어져 3년 전까지 사용되다가 노후화되어 신축 이동했다고 하더라. 그 후로 비워져있던 폐교도소를 협상 끝에 촬영지로 섭외했다. 버려진 지 2~3년이 되어 잡풀이 무성했던 곳을 새로 리모델링했다. 감시탑 같은 경우도 우리 영화에 맞게 개조했고, 운동장 옆쪽으로 사동 세트를 짓기도 했다. 또한 그 교도소가 다른 교도소에 비해 작은 곳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익호의 넓고 제국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취사장이나 대형 창고 등의 공간들은 청주에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프리즌>의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더욱 리얼하게 표현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이에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95년도를 시간적 배경으로 잡았다. 대형사고가 빗발치고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로 어지러웠던 해다. 그 사회를 보려면 교도소를 보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으로 질서가 잘 잡혀있으면 교도소가 잘 돌아가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교도소도 혼란스럽더라. 그 사회의 밑을 알 수 있는 곳이 교도소이기에, 아주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하여 1995년도가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이 더 그럴 수 있지만.
공간적으로는 리얼한 교도소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 끝에 실제 교도소에서 찍자고 했다. 원예실은 교도소 내 익호의 제왕과 같은 지위를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필요했다. 실제로 원예실이 있는 몇 개의 교도소가 있는데 다른 작업장보다 비교적 일이 수월하고 쾌적한 편이라고 한다. 그 안에서도 조금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배정을 받는 곳이기에 익호의 공간으로서 아주 적격이었다. 차가운 회색빛의 담장으로 둘러진 교도소, 그 안에 대비되는 초록빛의 따뜻한 공간, 그곳에서 익호는 제왕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사극을 보면 등장하는 왕의 붉은색 곤룡포처럼 모범수 죄수복을 입고 있는 익호가 눈에 띄게 돋보였다. 의도한 바인가.
맞다. 익호는 다른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에는 장기 모범수들이 익호가 입었던 색의 옷을 입었다. 지금은 색이 다양화되었다고 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는 익호뿐 아니라 다른 죄수들도 그 옷을 입고 있다. 다만 익호를 찍을 때는 그들이 화면에 잘 잡히지 않도록 배치했다.

정말 궁금하다. 진짜 영화처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리어 이렇게 묻고 싶다. ‘비현실적이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 되나’라고 하지만, 1995년도라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백화점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친구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눈앞의 백화점이 몇 초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뉴스를 보면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표현을 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영화 같은 일을 겪고 있었다. 한편으론 죄수들이 교도관들과 작당 모의해 밖에 나갔다 온다는 설정은 현실에 비해 너무 소소하다고 느껴지지 않나. 현실은 영화 같다고 하고, 영화는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다.
지금까지 62개국에 판매됐다. 요즘은 국내 개봉과 큰 차이 없이 개봉을 하는 터라 며칠 후에는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국 12곳, 캐나다 4곳 등 큰 도시 위주이며, 대만과 호주 등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 하와이국제영화제 스프링쇼케이스 등 해외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앞서 신인감독이라고 표현했는데 성적이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웃음)
막연하게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해외에서의 성과까지는 크게 기대 못했다. 큰 반응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생각해보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있을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교도소는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리고 과거에 밖에서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이든 파란 죄수복을 입으면 교도소에서는 다 똑같다. 각자의 욕구나 가치가 부딪치기도 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고, 그렇기에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와 이에 저항하는 자가 생겨나는 등 해외에서도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개인적으로 외국 관객들은 어떻게 영화를 보실지 궁금하다. 오히려 배우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적으니 더 큰 재미와 흡입력이 있을 수도 있다.

‘파란 죄수복을 입으면 교도소에서는 다 똑같다’라는 말이 인상 깊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교도소 안에서는 밖에서 뭐하던 사람이었는지 보다는 어떤 죄로 들어왔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 그에 따라 대우나 위치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더라. 영화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교도소에 대한 상식을 바꾸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을 전달하는 재미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엔딩에서 유건은 모범수이다. 제2의 익호가 되는 건 아닌가.
그렇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다. 유건은 궁극적으로 형의 복수도 있지만 왜곡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교도소로 뛰어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유건이 하려고 했던 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장면을 잘 보면 <프리즌>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질서정연한 모습이 그려진다. 교도관들이 있고, 죄수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원래 그게 정상이다. 그 장면을 통해 흐트러졌던 것들이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건도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된 불의에 대한 죗값을 달게 받으며 모범수로서 밝은 미소와 함께 사라진다. 아마도 검사가 “괜찮겠습니까?” 물으며 기회를 주려고 했을 때 유건은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라고 대답한 것이 익호가 전에 했던 말이기 때문에 유건이 제2의 익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판단은 오롯이 관객들의 몫이다.

감독 나현은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영화 서클 활동을 했었다. 영화는 정말 하고 싶은데 연극영화과는 아니니 길은 없고, 그러다 시나리오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돈도 안 들고, 그냥 쓰면 되니까. 4학년 때던가, 당시 영화진흥공사에서 진행하던 시나리오 공모에 장편 시나리오를 써서 보냈는데 장려상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 공모전의 대상이 김기덕 감독님이었고 그 분도 그때 데뷔를 하신 걸로 기억한다. 그 분은 세계적인 감독님이 되셨고, 나와는 거리가 엄청나고. (웃음) 이후 무명작가 생활을 4~5년 한 후 데뷔한 작품이 <목포는 항구다>이다. 생각해보면 그 기간 동안 상경과 낙향을 반복하긴 했다. 부산에서 한다는 것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지금은 부산영상위원회도 있고, 영화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도 구축되어 있지 않나. 후반작업도 가능하고, 스튜디오도 있고. 이제는 굳이 짐을 싸서 서울에 올라오지 않아도 영화하는 것이 괜찮아진 것 아닌가?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동력이 궁금하다.
우선 나는 상업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의뢰가 들어올 때에 그 작품들은 이미 기획이 된 상태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써놓은 것을 영화화하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을 예로 들면, 제작사에서 핸드볼 경기를 보고 난 후 이런 영화를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고 연락이 왔다. 이미 기획되어 있고 시나리오는 정해진 아이템 내에서 줄거리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야 기획 아이템과 콘셉트에 맞는 스토리를 능수능란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현재 예비창작자, 신인 작가, 활동 중인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등의 기획·개발을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하고 있으며, 지역 인력들에게 현장실습의 기회를 부여하여 영화제작현장에 실질적으로 투입 가능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의 예비영화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생각하기에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의 작법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들이 갖춰져 있으면 그 다음은 스킬인 것 같다. 장르에 맞는 이야기를 뽑아내는 기술적으로 숙련된 방식. 시나리오는 많이 쓰면 쓸수록 는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계속 무조건 써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읽는 것도 공부이다. 작법서 책을 사보는 사람들도 있던데, 강의할 때도 매번 작법서 책을 사지 말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아닌 사람이 쓴 두꺼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좋은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법서 자체가 작법을 늘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본 것 중에 감명 받은, 좋다고 생각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어보면 된다. 요즘은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나리오를 구할 수 있다. 그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내가 봤던 영화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하는 생각과 이것을 토대로 연출을 하고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고 알게 된다.

자꾸 쓰고 자꾸 읽고, 그것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 그 밖에 창의력이나 영감은 본인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 재능도 자꾸 해보면 커진다.

아직까지 영화를 하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부산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다. 사실 부산에 있든 서울에 있든 좋은 시나리오를 쓰지 않으면 기회라는 것은 없다. 부산에 있는 예비영화인들도 지역적 핸디캡은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 더 고민하고 집중하길 바란다. 그러면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다.

차기작을 부산에서 찍게 된다면 꼭 한 번쯤은 담아보고 싶은 공간이나 장르가 있는지?
부산 출신 감독님들은 보통 내 고향 부산을 잘 표현하신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부산 캐릭터는 쑥스럽게 느껴진다. 조심스럽다는 표현이 맞을까. 부산은 영화적으로 정말 좋은 장소들과 매력적인 에피소드들이 많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자신이 없다고 할까?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사고 한 번 치지 않을까 한다. (웃음) 다음에 하게 되면 정말 잘하고 싶어서이다. 할 이야기가 많아 슬쩍 잠깐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낼 생각이다.

처음에는 각본으로 시작하여 단역으로 연기도 했다. 이제는 연출까지. 혹시 이후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는 없나. 말씀을 워낙 잘하시니 TV출연도 좋을 것 같다. (웃음)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지 한다. 언론매체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한다. (웃음) 시나리오 작가치고는 인터뷰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감독을 하고서는 노출이 어마어마하다. 매일매일 즐겁게 마다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부산에서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 불러주셨어도 내려갔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형적인 질문이다. (웃음) 연출로서 이제 겨우 한 편을 만들었을 뿐이다. 다만 오랜 시간 시나리오 작가를 하다가 마침내 연출을 하게 된 것이기에 그 느낌이 대학에 가기 위해 3, 4수로 지내다 결국 합격한 것 같다. 합격했으니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졸업해야 하지 않겠나. <프리즌>을 만드는 과정이 전부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전에도 영화현장에 있었지만 연출자로서의 포지션은 겪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조금은 늘었을 것이다. 시나리오와 현장을 보는 안목, 영화에 대한 생각 등. 그렇게 얻은 경험치를 통해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 좀 더 깊이 있고, 좀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전형적인 대답이다. (일동 웃음)

나현 감독과 부산영상위원회는 나름의 인연이 있다. 부산영상위원회와 명필름이 함께 진행한 2013년도 부산영상기술교육 ‘8인의 한국영화 장인들’에 시나리오 파트 강의를 했었다. 이후 기획·개발 지원사업의 심사위원으로도 여러 번 함께 했다.
그렇다. 오라고 하면 무조건 가고, 심사도 하고 열심히 했다. (웃음) <영화부산>도 잘 보고 있다. 일전에 ‘부산에 보내는 편지’라는 코너에 글도 썼다. 부산으로 돌아간 K군에게 편지를 보내는 콘셉트였는데, 그때 그 K군을 다시 만났다. 다시 영화를 한다더라. 그리고 지난해 서영덕 편집기사님 인터뷰 글도 봤다. <돌려차기>(2004) 때 나는 작가였지만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어 스크립터를 자청했고, 서 기사님은 당시 현장 편집을 하셨다. 처음이어서 헤매던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동갑이어서 의지를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영화부산>에 인사말을 전한다면.
지금 한창 상영 중이지만,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상당히 좋다. 단순하게 액션영화로서 즐길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 담긴 내용을 잘 읽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그리고 부산영상위원회에 대한 관심을 항상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bfc

권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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