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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리와인드 [도착한 미래, 유예된 현재 <컨택트>]

문성훈의 리와인드 [도착한 미래, 유예된 현재 <컨택트>]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자못 점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을 빌어 서로의 존재를 탐문하려 하였던 지적생명체와의 조우는, 루이스가 외계종족으로부터 예언자이자 영매로서 선택받게 된 이 환영적 체험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컨택트>의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는 제 이름의 의미를 묻는 어린 딸 한나의 천진스런 질문에 선뜻 회문(回文)의 개념을 설명한다. 앞뒤 방향과 무관하게 동일한 소리로 발음되는 딸아이의 이름((H-A-N-N-A-H)은 영화 속 루이스가 겪는 시제의 혼돈, 즉 일상적인 세계관의 전복적 의미를 내포한다. 딸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때 이른 죽음이 압축적으로 제시된 도입부 이후 극 후반까지 간헐적으로 삽입되는 모자지간의 짤막한 씬들은 마치 주인공의 과거와 연관된 회한을 담은 평범한 플래시백인 듯 기능하지만, 외계생명체와의 조우를 계기로 뜻하지 않은 각성에 이른 루이스의 체험은 한나의 탄생 혹은 죽음이 영화 속 긴 여정의 원인이 아닌 결과에 해당함을 드러낸다.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테드 창의 단편소설 제목을 빌자면,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원제 <어라이벌>)는 불시에 지구로 상륙한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에 관한 일개 언어학자의 경이에 찬 보고일 뿐만 아니라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 않은 한 소녀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거대한 스크린을 사이에 둔 인간과 외계생명체가 제각기 사용하는 언어-문자로 서로의 존재를 탐문한다. 빼어난 언어능력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차출된 루이스는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 분)과 더불어 ‘헵타포드’로 명명된 외계종족의 목적, 즉 그들이 불현듯 지구를 찾아온 연유와 의도에 관해 묻고자 한다. 스크린 너머 희미한 실루엣의 헵타포드는 그 기이한 형체만큼이나 생경한 문자 체계를 지닌다. 각 품사에 해당하는 무수한 단어들의 배열과 조탁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류문명의 선형적 문자 체계와는 달리, 헵타포드가 사용하는 방사형의 문자 체계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시간법칙이나 그들에 의해 발화된 일련의 구문법에조차 얽매이지 않는 초월적 경지에 다다른 양 묘사된다.

가상의 외계 종족을 다룬 무수한 SF 장르물에서, 지구에 상륙한 낯선 여행자들은 대개 인류문명에 비해 진일보한 기술적, 진화적 성취를 이룬 존재로 그려졌고 그들과 마주하게 된 인간들은 으레 자신이 목도하게 된 외계생명체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혹은 경계와 경외를 오가는 양가적인 감정에 이끌린다. <컨택트>에서 주인공 루이스가 헵타포드에 대해 느끼는 경외감은 그들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가공한 무력이나 인류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 불순한 방문목적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사실 헵타포드는 영화 중반 ‘인류에게 무기를 주러 왔노라’는 모호한 메시지 이외에 그들 스스로에 대한 뚜렷한 단서나 지구를 찾아온 목적에 관하여 명확한 선언을 내놓지 않는다. 천공과 지상 사이에 머무른 채 그저 인류가 구축한 문명세계를 고요히 관조하려는 이방인의 시선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제각각의 군사적, 정치적 대책을 강구하려는 국가시스템 간의 불협화음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선형적 시제를 결여한 문자 체계란 곧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물리적 시간법칙과 유리된 헵타포드의 우주관과 결부된다.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점차 지구인으로서 자연스레 체화한 인과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한다. 마치 과거지사인 듯 배열되었던 딸 한나의 플래시백 장면들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예기적 사건으로 재배열되는 것은 루이스의 각성이 언어적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여기서 루이스는 미래로 구획된 시간을 단순히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헵타포드를 만난 이후의 모든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로 승화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언어란 결국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그들을 지배하는 우주관이 내포된 기호체계일 것이며, 영화 속 외계종족의 문자 체계에서 비롯한 이질성이란 곧 인류와 너무도 다른 그들 고유의 환경에서 기인한 생래적 본능에 해당할 것이다.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웠다한들, 여전히 지상에 속박된 인간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한 그녀가 언어의 전제가 되는 특유의 이질적인 우주관까지 체화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중반 이후, 헵타포드의 우주관으로 새로이 세상사를 바라보게 된 루이스의 각성은 흡사 종교적 체험의 양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헵타포드의 메시지, 즉 ‘인류에게 무기를 주러 왔다’고 해석되어 세계 각국을 긴장시켰던 외계종족의 문장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으로 여기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고 말했던 예수의 전언과 자연스레 겹친다. 헵타포드에 대한 인류의 불신으로 점차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 가운데 외계생명체와 다시금 마주한 루이스는 그들을 가로막던 방호장비와 스크린이 제거된 아득한 공간 가운데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초월적 존재의 현현을 목도한다. 다소 몽환적으로 그려진 이 장면에서 헵타포드는 비로소 루이스에게 자신들이 지구를 방문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자못 점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을 빌어 서로의 존재를 탐문하려 하였던 지적생명체와의 조우는, 루이스가 외계종족으로부터 예언자이자 영매로서 선택받게 된 이 환영적 체험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시제가 없는 헵타포드의 언어가 상징하듯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은 채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 루이스는 이로 인해 현재라는 시간이 지닌 비예측성과 자유의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먼 훗날 지구와 헵타포드에 닥칠 범우주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를 대표하여 예언자의 지위에 오른 루이스는 미래에 도래할 일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을지언정 그것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선회할 수 없으며, 아직 엄마가 되기도 전에 선연히 그려지는 딸 한나의 짧은 생에 관한 파노라마는 불가항력적이라는 면에서 그녀에게 천형(天刑)과도 같이 다가오는 비극이다.

회문으로 이루어진 한나의 이름처럼, 생명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예정하고 있으며, 하나의 죽음은 탄생으로부터 비롯된 무수한 시간을 내포한다. 만물을 지배하는 인과율에서 벗어나 선형적으로 구획된 시간의 흐름에서 탈피한 루이스는 한나의 탄생과 죽음 사이, 모자간의 애틋했던 시간들을 과거(플래시백)나 미래(플래시포워드)가 아닌 영원한 현재의 순간으로 영위하고자 이미 도착된 미래를 향해 도약한다. 자못 거대하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컨택트>의 이야기는 이렇듯 뜻밖의 울림을 전하는 보편적 인간의 이야기로 귀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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