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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리와인드 [모두가 왕의 사람들 <더 킹>]

문성훈의 리와인드 [모두가 왕의 사람들 <더 킹>]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깃을 잡고, 첩보를 기획하고, 적당한 기회에 터뜨리는 일’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자 출세를 보장하는 지름길이었다.

한 정치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권력이란, 그것이 없었더라면 구태여 하지 않았거나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하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라고. 그 동기가 무엇이 되었든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한 집단에 속한 자연인으로서 무언가를 도모하거나 성취하는데 제약을 가하는 일정 수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일개 자연인으로서의 협소한 굴레를 탈피한 권력자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며, 더 나아가 권력을 쥔 그 자신의 삶의 활로마저 뒤틀어버린다. 무릇 권력이란 개념 자체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포하지 않지만, 근래의 우리가 목도하는 권력자들의 비루한 모습들은 권력을 둘러싼 인간본성과 사회구조의 어두운 면모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한 풍경이었다.

자신이 쟁취한 조악한 권력 아래 기성의 모든 구속과 제약이 지닌 합의적 가치를 무참히 유린함에도 모자라 아직 거머쥐지 못한 더 큰 권력에의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에서 비롯한 힘이 아니었더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갖은 기행을 자행해온 무리들. 그들을 중심으로 항간에 떠도는 숱한 설화들은 권력을 쥔 소수엘리트 계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아울러, 대다수 대중들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질적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어쩌면 <내부자들>, <마스터> 등 현 세태를 반영한 이른바 ‘시국 영화’들이 관객들의 주목을 끈 이유는 이렇듯 사회시스템을 잠식한 기득계층에의 혐오와 반감, 그리고 영화 속 권력자들에 의해 표출된 보편적 욕망에 대한 낯 뜨거운 동질감이라는 대중의 양가적 감정에 기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은 검찰조직의 일원 박태수(조인성 분)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배후에 도사린 국가 최고 엘리트집단의 추악한 이면을 다룬다. 흡사 마틴 스콜세지의 몇몇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영화의 서사구조 가운데 주인공 박태수는 <좋은 친구들>의 레이 리오타, 혹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러했듯이 오로지 신분상승에 대한 갈망과 동경 하에 질주하는 인물이다. 아무런 꿈과 희망도 없이 무의미한 싸움질로만 소일하던 학창시절의 박태수가 불현듯 사법고시에 뛰어들게 된 계기 가운데는 직업에 대한 일말의 소명의식조차 엿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살던 제 아버지를 무릎 꿇게 한 검사라는 직업의 위용, 약자를 군림하는 강자의 권력은 그 누구보다 ‘폼 나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한 어린 박태수의 인생을 뒤흔들어놓는다.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가 된 박태수가 모처의 펜트하우스 파티장에서 만난 전략부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 분)은 검찰조직 내부에서도 신화적 인물로 추앙받는 권력의 화신이다. 검사들만의 난잡하며 퇴폐적인 파티 분위기에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박태수를 두고, 한강식은 돌연 그의 뺨을 내리치며 자못 유치하게 들리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자존심이나 정의감 따위 모두 내던지고 권력 옆에 머무른 채 그저 역사적으로 흐르듯 가라는 선배검사의 말.

<더 킹>은 87년 체제 이후 30여년에 걸친 세월을 다루며 적지 않은 분량의 자료화면을 통해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데, 이 영화가 다루는 ‘역사’란 한강식의 말마따나 최고 권력을 쥔 위정자 곁에 빌붙은 기회주의자들의 승리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영민한 검사 한강식의 무리들은 군부에서 민간으로 정권이 이양된 이후에도, 역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진 시기에도 권력의 한복판을 떠나지 않으며 그들만의 왕국을 공고히 구축해나간다. 대기업 재벌, 장관, 거물급 정치인 할 것 없이 그들이 멋대로 골라 기소하는 사건들은 죄다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막강한 권력. 스스로가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전략부 검사들에게 있어, ‘타깃을 잡고, 첩보를 기획하고, 적당한 기회에 터뜨리는 일’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자 출세를 보장하는 지름길이었다.

한강식의 비호 아래 점차 권력의 정점을 향해 상승하는 박태수의 삶과는 달리, 그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최두일(류준열 분)은 목포 지역을 평정한 조직폭력배가 되어 옛 친구와 재회한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이들의 관계는 검사와 조폭이라는 상반된 사회적 위상이 실상 암묵적 결탁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를 은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고 권력을 필두로 수직적으로 결집한 부패의 연결고리. 양지와 음지를 무대로 응집한 그들의 야합은 영속적으로 되풀이되는 권력의 이합집산 가운데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며, 언젠가 맞이하게 될 와해와 붕괴의 결말을 가능한 한 지연시키려 한다.

자료화면으로만 얼핏 모습을 드러낸 최고 권력자들은 수차례 권좌를 오르내리며 제각각 이전 정권과는 다른 시대를 약속하지만, 한강식을 필두로 한 검찰조직은 얼굴에 띤 표정만 그럴듯하게 탈바꿈한 채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기약한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저물지 않는 권력, 그 누구에게도 강탈당하지 않는 권력의 사유화다. 스스로 왕을 자처하던 그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무당을 불러 한바탕 굿을 벌이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했던 ‘상고출신의 대권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시도하였던 검찰개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잔혹한 보복과 비극적 최후였다.

힘을 가지기 위해 검사가 되었고, 권력을 좇아 한강식의 꼬리를 자처했던 박태수는 종국에 이르러 그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은 채, TV에 비친 한 대통령의 죽음을 목도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스스로 왕 행세를 하며 급기야 괴물이 되어버린 현 세태 가운데 추악한 권력에 지배받는 우리는 감히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에둘러 희망적이고 이상적으로 제시된 영화의 결말과는 달리, 자못 만화경처럼 펼쳐진 한국의 현대사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에 관해 함부로 낙관하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스스로 왕이 되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타락한 왕의 사람으로 남는 것을 거절하는 길. 어쩌면 영화 속 박태수의 선택은 우리의 내일을 기약하게 할 최선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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