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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리와인드 [벼랑 끝에 선 인간선언 <나, 다니엘 블레이크>]

문성훈의 리와인드 [벼랑 끝에 선 인간선언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로에 접어든 허름한 행색의 한 남자가 스프레이를 들고 관공서 외벽에 큼지막한 글씨를 휘갈긴다...

초로에 접어든 허름한 행색의 한 남자가 스프레이를 들고 관공서 외벽에 큼지막한 글씨를 휘갈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으로 운을 뗀 침묵의 선언. 어처구니없는 연유로 자신을 질병수당 지급명단에서 제외시킨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의 표출에 발걸음을 멈춘 인파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쏟아진다. 평생을 목수로 일하며 정직하게 늙은 노동계층의 사내, 이제는 은퇴하여 노후의 삶을 걱정해야 할 시기에 직면한 이 남자, 다니엘 블레이크는 어쩌다 길거리에 선 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그마한 소요의 ‘문제아’로 나서게 된 것일까.

켄 로치의 은퇴작으로 알려진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사회,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냉혹한 경쟁체제 하에 비참한 처지로 내몰려 생존을 위협받게 된 평범한 이웃들의 현실을 다룬다. 60년대 이후, 수십편에 이르는 영화와 TV드라마를 연출하며 영국 내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견지하였던 거장 켄 로치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후 두 번째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평범한 소시민으로부터 존엄하게 늙어갈 권리마저 앗아가 버린 국가시스템의 폭력을 고발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암전이 걷히지 않은 채로 한참동안 이어지는 대화. 심장쇼크로 더 이상 무리한 육체노동이 불가하다는 진단을 받고 질병수당 지급절차를 밟은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불친절한 담당자로부터 쏟아지는 형식적이며 무의미한 질문들에 점차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불쾌하게 끝나버린 대화 이후, 카메라는 관공서로부터 통지서를 받아든 남자의 당혹스런 표정, 질병수당 지급을 거절한다는 관공서의 뜻하지 않은 결정과 맞닥뜨린 다니엘의 초라한 몸뚱이를 비춘다. 먹고살기 위해 평생을 노동해 온 신체의 건강을 잃은 그가, 이제는 병든 육신을 돌볼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할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관청의 부당한 결정에 항고하고자 마음먹는다.

이때부터 그가 거쳐야만 할 복잡한 관문들. 평생을 목수로 일하며 인터넷 접속조차 생소해하는 노인에게 있어 관공서가 요구해온 자질구레한 절차들은 자식과 배우자 없이 홀로 모든 일을 감내해야만 하는 그에게 냉혹한 장벽으로 다가오는 과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진땀을 흘리는 그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려는 관공서 직원의 선의도 잠시, 불편한 기색으로 등장한 관리자는 곧장 직원을 불러들여 ‘원칙’을 들먹이며 그녀를 노인으로부터 떼어놓는다. ‘원칙’이라는 개념의 이상한 적용은 다른 장면에서도 유사한 외양으로 반복된다.

두 아이를 데리고 런던에서 이주해 보조금을 신청한 미혼모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는 뉴캐슬의 익숙치 않은 지리 탓에 약속한 상담시간을 넘겨 부랴부랴 관공서에 도착하지만, 시간을 엄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마저 거절당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직업도 없고 가진 재산마저 없이 두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케이티 입장에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푼돈의 지원금이나마 절박한 상황. 마침 대기실에 앉아 상황을 목도하던 다니엘은 그녀의 사정이 딱하여 직원들에게 애써 선처를 호소하지만 예의 ‘원칙’을 강조하는 담당자의 완고한 태도 앞에서 허탈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복지제도의 취지가 실무자들이 내세우는 행정의 편의 앞에 무색해지고야 마는 일련의 상황들은 정작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지원을 요청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모멸과 환멸을 안기는 씁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켄 로치는 묻는다. 국가가 요구하는 절차와 원칙 가운데 제각기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을 본질적인 권리가 배제되어 있다면, 그들이 내세우는 원칙이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가치에 해당하는 것인가.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 다니엘과 케이티는 서로 다른 출신배경과 성별, 확연한 세대의 격차로 인해 이렇다 할 접점을 지니지 못한 관계로 그려진다. 하지만 푼돈의 지원금이나마 얻기 위해 가난과 무능을 증명해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 더구나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국가에 납득시켜야만 할 절대적 명령을 수행하는데 실패함으로써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빈곤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점에선 두 사람은 동일한 비극을 공유한다. 관료제의 일률적 잣대에 의해 구획된 ‘부적응자’들의 무리는 언젠가 그들에게 베풀어질지 모를 일시적 시혜를 갈망하며, 처절한 빈곤의 현실 가운데 힘겹게 허덕일 뿐이다.

가난이 무서운 것은 비단 단순한 굶주림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푸드 뱅크(기탁 받은 식품을 사회 소외계층에 배급, 지원하는 복지사업)에 들어선 케이티는 너무도 배가 고팠던 나머지 선반에서 집어든 통조림의 음식물을 허겁지겁 집어삼키다 수치스런 마음에 왈칵 눈물을 쏟고 만다. 생리대를 비롯한 생필품이 절박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직원에게 망신을 당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도 유사한 감정이 엿보인다.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떠밀리듯 수치스러운 상황 가운데 연루되고 후회하는 악순환. 자신의 이름과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빈곤의 무게 앞에서 차츰 매몰 되어가는 뼈아픈 상실.

영화 속 다니엘 블레이크가 자신의 이름을 구태여 세상 앞에 드러낸 것은 인간으로서 일말의 존엄마저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이자, 그러한 권리를 국가로부터 마땅히 쟁취하고자 분연히 일어선 처연한 투쟁이다. 그는 자신의 항고이유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벼랑 끝에 선 그는 관료주의와 법규만능주의보다 우선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갈구한다. 인간으로 살기위해, 혹은 인간으로 죽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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