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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리와인드 [다시, 새로운 희망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문성훈의 리와인드 [다시, 새로운 희망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그 원 부대의 장렬한 최후를 바라본 라더스 제독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들의 포스는 곧 저버릴 수 없는 대의와 희망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에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이하 <새로운 희망>)은 본격적인 신화의 서막을 열기에 앞서,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오프닝 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전사(前史)를 들려준 바 있다.

“… 내전의 시대였다. 비밀기지를 거점으로 공습을 감행한 저항군 부대는 사악한 은하제국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한 저항군 첩보원은 제국의 치명적 무기로서 행성을 파괴할 만큼 가공한 위력을 지닌 무장 우주기지 ‘데스 스타’의 비밀 설계도를 가까스로 훔치는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이 짤막한 전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워즈의 모든 이야기들이 바로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빼돌린 어느 이름 모를 첩보원의 활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 무명의 첩보원은 대관절 누구였기에 무시무시한 제국군을 상대로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제국의 비밀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는 촉망받는 제다이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악의 화신’ 다스 베이더로 거듭난 프리퀄 3부작의 결말로부터 그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의 영웅담을 그린 오리지널 3부작의 서막 사이, 시리즈에서 다루어진 바 없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숨겨진 시간을 다룬 최초의 스핀오프 영화다.

직역하자면 ‘죽음의 별’에 해당하는 데스 스타는 제국군의 첨단 기술력과 막강한 군사력이 집약된 행성형 요새로서, 오리지널 3부작의 저항군들이 숱한 희생을 치르며 대결을 벌여야만 했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데스 스타는 제국군의 지휘부가 생각지도 못한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었으니, 이러한 약점을 파고든 저항군은 제국군을 상대로 번번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야 만다. 아무리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제국군이라지만, 그들을 무찌르는 저항군의 짜릿한 승리를 그려야만 할 제작진의 입장에선 제국의 ‘결전병기’를 일거에 무너뜨릴 결정적 급소를 심어놓을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다윗의 돌팔매질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골리앗을 바라보듯, 시리즈의 오랜 애호가들은 이러한 데스 스타의 조악하기 그지없는 내구성에 의구심을 표하였고 급기야 이를 희화화한 패러디영상까지 제작될 지경이었다. 현재까지 일곱 편에 걸쳐 이어진 스타워즈 연대기에 있어, 데스 스타는 바로 제국군의 무소불위한 권력과 오만, 위용과 무능을 동시에 드러낸 상징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데스 스타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 <로그 원>은 제국군을 조롱거리로 전락케 한 우주병기의 어이없는 약점에 우리가 알지 못한 모종의 사연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강변한다. 그리고 <로그 원>이 들려주는 데스 스타에 얽힌 사연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한 솔로, 레아 공주로 대표되는 굵직한 ‘왕조’의 서사가 아닌, 스타워즈 연대기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세계관 속 보통 사람들을 둘러싼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선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은하제국의 과학자인 갤런 어소(매즈 미켈슨 분)는 제국군의 강요로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신무기 제작에 뛰어든다. 제국군의 위협으로부터 피신한 그의 딸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 분)는 무기의 완성을 막으려는 반란군 세력을 통해 아버지의 육성이 담긴 홀로그램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에 따르면 갤런 어소는 거짓으로 제국군에 순응하여 ‘데스 스타’라는 이름의 무기제작에 나서게 되었지만 이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결함을 내부에 숨겨두었고, 저항군에서 그 설계도를 입수한다면 제국군의 신무기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었다. 반군연합 일각에서는 갤런 어소가 보낸 메시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지만, 진 어소를 비롯한 일군의 저항군은 설계도를 입수하기 위해 2.4%의 성공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 위험천만한 작전에 나서게 된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현대 미국의 건국신화에 빗댄 거창한 수사에서 엿보이듯, 조지 루카스가 창조한 범우주적 스페이스 오페라는 소위 영웅설화라 일컬어지는 신화의 문법과 상통한다. 출생의 비밀을 지닌 평범한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고귀한 운명을 깨닫고, 자신의 친부를 무너뜨리며 영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도식은 오리지널 3부작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를 통해 비교적 충실히 구현되었다. 조지 루카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이자 스타워즈 시리즈의 ‘절대악’인 다스 베이더의 반(反)영웅적 연대기를 프리퀄 3부작에서 그려내기도 하였다. 결국 오리지널 3부작과 프리퀄 3부작은 각각 루크 스카이워커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위대한 제다이 혹은 무소불위한 절대악으로 거듭나는 결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영웅신화의 완성을 향해 귀결된다.

영웅과 반영웅, 혹은 난세의 구원자와 집행자로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할 예견된 운명에 이끌린 스카이워커 부자와는 달리, <로그 원>의 갤런 어소와 그의 딸 진은 군웅들의 전쟁놀음에 변방에서의 평온한 삶을 박탈당한 시대의 희생자로 그려진다. 침략자의 총부리 앞에 굴복한 갤런은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부역자로서 제국군의 신무기 개발에 협조하여 반군연합의 공분을 사지만,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자신의 딸 앞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고자 과학자로서 저항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중대한 비밀을 내어놓는다.

갤런 어소가 전한 메시지를 떠 받들어 분연히 여정에 나선 의용조직은 초월적 능력을 지닌 제다이 집단이 아니다. 아마도 최후의 제다이였던 오비완 케노비가 제국군의 추격을 피해 타투인 행성에서 오랜 기간 은신 중이었을 이 시기, 제다이들의 존재 근원이었던 ‘포스’는 이제 몰락한 맹인 수도승 치루트 임웨(견자단 분)의 공허한 기도문으로만 남아있는 관념적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듯 <로그 원>은 광선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장풍을 쏘아대는 의협적 영웅이 사라진 시기, 막강한 제국군을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든 보통 사람들의 희생에 초점을 맞춘다.

스타워즈 유니버스’는 별들의 전쟁, 즉 영웅들 간의 격렬하며 지난한 혈전으로 채워진 장대한 역사다. 하지만 <로그 원>은 옛 영웅이 스러지고, 새 영웅이 등장하기 이전의 여명기로 시선을 돌린다. 역사는 이 시기를 일고의 희망마저 존재하지 않던 암울한 시대로 기록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룬 <로그 원>의 엔딩을 맞이하자면, 그들의 투쟁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저항군의 항전이 시작되는 <새로운 희망>의 첫 장면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세상이 소수의 영웅들에 의해 격변한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지극히 평범한 필부마저 영웅적 존재로 내세우는 무대란 결국 어지러운 시대상에 다름 아닐 것이다. “로그 원, 포스가 그대들과 함께하길.” 로그 원 부대의 장렬한 최후를 바라본 라더스 제독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들의 포스는 곧 저버릴 수 없는 대의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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