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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 소외된 자들의 존엄에 대하여

<죽여주는 여자> – 소외된 자들의 존엄에 대하여

비록 사회에서 소외되었지만 끝까지 자기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이재용 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가난과 소외의 문제는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작가들의 오랜 주제였다.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연인들의 이야기인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부터, 가난의 극단에 몰려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여전히 많은 작품들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올 10월에 개봉한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는 우리 시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인물들에 대한 변주이다. 종로 일대에서 유명한 소영(윤여정 분)은 노인들에게 성을 파는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이다. 65세의 나이에 노인들과 관계를 맺고 받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는 우연히 코피노 아이를 맡아 돌보게 되면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노인으로부터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연민으로 행한 그 일을 시작으로 그녀에게 자꾸만 자신을 죽여달라는 노인들의 부탁이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재도 소재이지만 트랜스젠더나 장애인, 노인, 혼혈아 등 소외 계층에 속한 인물들이 주로 나오기에 언뜻 보면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예상과 다르게
영화는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흘러간다. 인물들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서로에게 다정한데 일수를 갚아가며 남루하게 사는 소영이 길을 가다 우연히 엄마를 잃은 코피노 아이를 발견해 데려와 잘 거두는 것이며, 그 아이를 이웃들이 군말 없이 거의 공동 양육의 형태로 돌아가며 돌보는 설정이 그렇다. 게다가 소영은 한때 자신을 많이 예뻐해 주던 단골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병문안을 가고,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기까지 하는데 그 전개 방식이 무척이나 따뜻하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는 이들의 처한 힘든 삶의 무게에 비해 이야기를 너무 가볍고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또는 존재 안에 목적을 담은 자기 목적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엔 존엄성을 앗아 가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순히 불쾌한 정도를 벗어나 무시당하는 대상이 된다거나 더 나아가 짓밟힌다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버는지’, 혹은 ‘얼마나 가졌는지’로 환산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쉽게 짓밟히게 되는데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곧 사회로부터의 소외이며 이는 그의 가치는 물론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이 듦’이라는 조건까지 겹쳐지게 되면 절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축적해 놓은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 노화라는 것은 일할 수 있는 기능을 점점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을 파는 소영의 늙은 몸의 가치가 박카스 1병으로 대변되는 것처럼 존재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회적 제도로부터 소외된 채 존엄성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는 불변의 진리에 더하여, 누구라도 삐끗하기만 해도 쉽게 소외될 수 있는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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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 영화를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한 여성의 비극, 혹은 남성들로부터 끝까지 착취당하는 여자의 이야기라 말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착취의 이야기로 국한시키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남자 노인들 또한 더 이상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게 되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 똑같은 소외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약자인 이들은 착취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고, 도와주는 관계이다. 죽기를 원하는 노인들은 최소한 자기 자신으로서 의식이 명료할 때 생을 끝냄으로써 자기 존엄을 지키고자 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생을 끝내고자 하는 자기부정의 상태이지만 뒤집어 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으로서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인 것이다. 따라서 같은 약자로서 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소영이 이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구원하는 행위로까지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사회에서 소외되었지만 끝까지 자기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이재용 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에 그것을 말하는 작품의 톤이 어떤 이에게는 ‘너무’ 따뜻하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조용히 조명하면서 그들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 타인에 대한 인식과 공감이 존엄을 지키는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죽여주는 여자, 소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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