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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부산에서 만난 한국영화의 신예들

2016년 부산에서 만난 한국영화의 신예들

금으로 서는 비교적 한 작품 안에 동시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장단점의 양쪽 을 두리번거리면서 이 작품들의 가치 를 소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영화부산> 2015년 겨울호 ‘한국영화단상’에 필자가 썼던 내용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국영화 네 편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은 특별한 기준 없이 감독과 영화에 관한 이런 저런 인상기를 썼었다. 이번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취지로 써보려고 한다. ‘2016년 부산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 신인 감독들의 한국영화 중 인상 깊었던 작품 4편’에 대한 감상기이며 리뷰이기도 하다. 뉴 커런츠와 비전 부문의 영화들에서 골랐는데, 다만 이 부문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니다. 뉴 커런츠에 포함된 한국영화 2편 중에서는 이동은의 <환절기>를 보지 못했고 비전 부문 11편중에서는 이완민의 <누에치던 방>, 신준의 <용순>을 보지 못했다.
안선경의 <나의 연기 워크샵>은 기대를 다소 접은 채 보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전작 <파스카>는 2013년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서 수상하며 이목을 모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평범한 영화로 보였고 지금도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그에 비하여 <나의 연기 워크샵>은 훨씬 더 면밀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네 명의 학생과 한 명의 선생이 말 그대로 연기 워크샵을 꾸려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흥미로움이 그 워크샵의 목적 자체에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그들이 때때로 지향하고 드러내는, 연기란 무엇인가 하는 연기 존재론에 대한 깨달음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매력적이다. 연기를 하는 순간과 그들의 실제 삶의 순간이 분별없이 겹치게 하거나 혹은 두 순간 사이에 얇게 쳐져 있던 막을 훌쩍 건너뛰어버리도록 하면서 영화가 만들어내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리듬이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파스카>보다 <나의 연기 워크샵>
은 훨씬 더 많은 장점을 갖추고 있다.

형식의 면모에서 본다면 장우진의
<춘천, 춘천>이 가장 집요한 자의식을 지닌 경우에 해당한다. 사실 이건 상찬이기도 하고 비판이기도 하다.
<춘천, 춘천>은 한 눈에 보아도 형식적으로 고양된 기존 영화사의 정전들에 대한 학습력이 높다. 반면 그 학습력이 지나친 나머지 모방의 늪에 빠져 있기도 하다. 주인공은 두 부류다. 한 쪽은 젊은 남자이고 춘천이 고향인 취업준비생인데 취업이 잘 안되어서 고민이다. 다른 한쪽은, 부부는 아니지만, 춘천에 함께 놀러온 한 쌍의 중년 여행객이다. <춘천, 춘천>을 보는 내내 명백하게는 지아 장 커(자장커, 賈樟柯)의 <스틸 라이프三峽好人: Still Life>(2007)가, 혹은 다소 희미하게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어떤 영화들이 연상되는 걸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춘천, 춘천>은 형식에의 집착을 통해 마침내 기이한 감성을 자아내는 장면을 포착해내기도 한다. 한 장면이 유독 기억난다. 중년 커플의 대낮 술자리를 영화는 롱테이크로 담아내고 있다. 그때 그들을 비췄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햇볕의 출몰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행운이자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다.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의 밀도라는 면에서 본다면 <꿈의 제인>이 가장 인상적이다. 영화는 소현이라는 주인공을 따라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전반적으로도 정교하다. 전반부는 가출 소녀 소현과 트랜스젠더 제인의 관계에, 후반부는 제인의 보살핌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현의 힘겨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도입부가 한참 지나도록 관객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다소 애를 먹게 되어 있다. 후반부에 오게 될 장면들이 도입부에서 이미 어떤 관여의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전반의 밀도를 조율할 줄 아는 감독의 유능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더하여 소현을 연기한 이민지, 어떤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이라고 불리는 이 여배우의 힘이 이 영화에 미치는 힘도 크다. 한편 제인 역할을 맡았고 최근 독립영화계의 대표적인 얼굴이 된 구교환도 눈여겨 볼만하다. <꿈의 제인>은 여러 가지 장점을 지녔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영화가 혹은 감독이 자신이 선택한 사회적 제재와 형식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게 자만의 독이 될지 도약의 힘이 될 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뉴 커런츠 부문에서 상영된 두 편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인 임대형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아주 평범할 것처럼 시작해서 점점 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다가 종국에는 슬픈 웃음을 선사하면서 끝나는 괴상한 굴곡을 지녔다. 동네 이발사가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별 볼일 없는 영화감독이다. 영화는 이발사로부터 시작해서 아들의 이야기로 건너갔다가 다시 이 두 사람이 뭉쳐서 무언가를 해보는 쪽으로 전개된다. 이발사인 아버지는 평생 묵묵히 일했지만 지금은 위중한 병에 걸려 죽음이 임박해 있고 가슴에만 지녔던 꿈 하나를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꿈을 위해서는 아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이 영화의 인물이나 소재는 단편영화에서나 상업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단점인 것 같다. 지나치게 느린 척 하는 인상도 처음에는 다소 부여된다. 하지만 상투화될 염려로부터 영화가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감정에도 속력이 붙고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 된다. 서두르는 법 없이 여유 있게 돌고 돌아서 한 남자의 생의 끝을 혹은 한 가족의 가족사를 다시 써낸다.

소개한 네 편의 영화 중 어느 한 편을 두드러지게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각 영화가 지닌 장단점이 워낙 다르다. 아직은 그냥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런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신인 감독들의 영화란 다르게 말해 한국영화의 미래다. 하지만 이 미래가 어떤 식으로 도래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남을 수도 있으며 단점을 넘어서서 장점만 성취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비교적 한 작품 안에 동시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장단점의 양쪽을 두리번거리면서 이 작품들의 가치를 소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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