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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제작기

‘더 킹’ 제작기

영화 <더 킹>은 성공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드라마틱한 설정을 하기위해 저 외딴 목포의 시골마을에서 시작해 서울의 강력한 권력을가진 집단인 검사에 오르기까지, 쉽게 말해 가장 밑에서 가장 위까지 올라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 <더 킹>(2017)의 주요 배경은 목포,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다. 사실 부산하고는 거의 관련이 없기 때문에 굳이 부산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을 찾은 이유는 영화를 찍기 위한 환경이 잘 조성된 영화도시이기 때문이다.

img3152부산의 첫 촬영지였던 보수동 책방골목이 생각난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도 많고 주변에 부평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이 근접해 있어서 매우 혼잡스러운 촬영지였다. 그리고 촬영도 많이 했던 장소였기 때문에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먼저 불편함부터 호소할 정도였다. 이미 촬영장소는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거의 확정됐고 필자 또한 이곳 보다 더 좋은 공간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인들 한분 한분에게 촬영에 관련된 충분한 설명을 드리고 양해를 부탁했다. 심지어 촬영 일정이 바뀌고 나서도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똑같이 시간을 투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일정이 바뀌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웃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촬영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상인협회장님이 ‘이 곳에서 촬영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좋았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역시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느꼈다. 촬영을 하기 전에 충분한 준비단계와 부산영상위원회의 촬영지별 맞춤 정보, 그리고 상인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3박자가 맞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부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장소는 기장에 있는 월내리 마을이다. 영화 속 실제 배경은 80년대 초중반 바닷가가 보이는 목포의 작은 마을이다. 목포가 실제 배경이다 보니 프리프로덕션 때부터 제주도를 제외하고 목포를 비롯한 전국의 바닷가는 다 조사해 보았다. 실제로 가 본 곳도 많다. 태수(조인성 분)가 서울로 상경하기 전까지 살아왔던 공간이자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적이고 거친 한 남자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시작점이기 때문에 장소 헌팅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다. 서해와 남해를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부산부터 동해 바다까지 바닷가가 보이는 마을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결국 부산에 한 곳, 울산에 두 곳이 최종 후보지로 올랐고 최종 확정은 부산 기장의 월내리 마을이 선택됐다. 부산이 시대적으로, 공간적으로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더 킹>이 개봉된 후 아마도 여러 매체와 관객들이 ‘그 곳(부산 월내리 마을)이 목포가 아니었구나’하며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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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장소 헌팅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오는 장소들이 있다. 월내리 마을에 처음 갔을 때가 그랬다. 넓은 바다 바로 앞에 예스러운 도로를 하나 두고 80년대에도 존재했을 법한 오래된 집들이 몇 채 있다. 폐가도 곳곳에 있고 그 폐가 앞에 구불구불한 길들과 기찻길 위로 보이는 육교가 참 영화적인 공간이었다. 육교 위에서 보이는 한 여름의 반짝이는 동해바다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기찻길 또한 저 육교 넘어로 새로운 철도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좋은 공간을 우리가 마지막으로 촬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곳에서 태수 아버지의 통닭 길(통닭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마을 길)과 육교 위에서 태수의 고교시절 패싸움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마을 이장님과 마을 분들의 큰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다. 촬영을 위해 재개발 공사를 한 달 뒤로 연기시켜주셨고 촬영이 시작됐을 때는 이장님이 복지관 식당을 열어 우리 스태프들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셨다. 부녀회장님은 마치 마을의 큰 잔치를 열듯이 푸짐하게 음식을 해주셨고, 젊은 친구들이 놀러 와서 마을을 알려주는 하나의 행사로 기억해주셔서 감사했다.

월내리 마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협의를 못했다면 마을에서 촬영을 못 할 정도의 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도로의 끝에서 끝까지 3분의 2는 땅이 파여 있었고 옆에는 인도를 만들기 위한 자제들이 쌓여 있었다. 월내리 촬영 예정일 2주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너무 황당해서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하늘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걸까···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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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장님에게 부탁드려 공사에 관련된 모든 담당자를 만나 회의를 열었다. 간단한 영화 소개로 시작해서 작년 여름부터 왜 이곳을 오게 됐는지, 거의 전국을 다 찾아봐도 이곳만한 원석은 없었고 영화적인 공간으로 미술작업을 했을 때는 모두들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쉴 새 없이 설명했다. 결국 마을 분들과 공공기관에 계신 분들은 촬영을 잘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보여주셨다. 설명 중간 중간에 이장님의 추임새와 호응이 큰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공사를 담당하는 소장님만 허락하신다면 촬영은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사를 멈춘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구나 공사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 파 놓은 것도 다 덮고 공사 이전으로 만들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된 계약 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게 되니 비용도 더 많이 들어가는 상황이 된다. 필자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무리한 요구였다.

이번에는 다 같이 현장으로 모시고 가서 설명을 시작했다. 촬영에는 어떠한 장비들이 쓰이며 배우를 포함한 현장 인원들이 하는 일도 알려드렸고 심지어 어설픈 연기도 보여드렸다. 정말 간절하게 부탁했다. 젊은 친구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결국 담당 소장님은 공사비 왕창 깨진다고 너스레를 떠시며 대신 잘 만들어 보라며 덕담까지 해주셨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오랫동안 인사드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설날 연휴도 반납하고 부산에 머무르기로 했고, 현장에는 매일 한 번씩 방문했다. 담당 소장님이 큰 형님처럼 잘 대해주셨고 마치 영화를 오랫동안 해 오신 분 같은 친근함까지 느껴졌다. 공사를 했던 그 도로를 80년대 비포장도로로 만들어야 했는데 소장님이 어떤 흙으로 덮어야 하고 양은 얼마나 필요하며 굴삭기를 이용해야 한다고까지 조언해주셨다. 결국에는 도로 공사를 하러 왔던 분들이 이번에는 촬영을 위해서 다 같이 현장 스태프가 되는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또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기장경찰서에 가서 안전요원 배치 등 마을에 있는 도로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설명해야 했다. 이번에는 부산영상위원회 팀장님과 함께 공문을 가지고 가서 안전을 약속했고, 왜 같은 시기에 같은 현장에서 공사와 촬영 공문이 각각 들어왔는지, 왜 공사하는 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실 수밖에 없는지까지 충분한 설명을 드렸고, 성공적으로 나머지 촬영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안에서는 부산영상위원회, 밖에서는 담당 소장님과 마을 이장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에 촬영은 잘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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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에서 바다가 보이는 중요한 장소가 크게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방금 언급했던 80년대 목포 바다가 보이는 마을(부산 기장 월내리 마을)이고 나머지 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태수의 별장이다. 서울에서 좌천된 태수가 지방에서 지내는 별장으로 영화상 큰 전환점이 되는 장소다. <더 킹>을 크게 두 공간으로 나눈다면 필자는 별장을 기점으로 나누고 싶다. 왜냐하면 이 공간에서 태수가 심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이 별장은 한 여름 장마철에 헌팅됐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별장이 더 외로워 보였고 마치 <더 킹>을 위해 만들어 놓은 야외 세트 같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를 맞으며 둘러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헌팅된 자료들은 보통 서울에 올라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를 하지만 별장을 헌팅한 주는 일정이 바쁜 관계로 보고회의 때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보고회의가 끝나고 얼마 후 ‘좌천 별장 확정’이란 말을 전달 받았고 순간 기분이 묘했다. 중요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자료 확인만으로 장소가 확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두달 후 감독님이 직접 별장을 둘러보시고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공간이라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도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난 후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래서 때로는 안전하게 마무리 했다는 것과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생각나서 감동의 눈물이 흐르곤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 초반, 장소 헌팅부터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계약, 숙박 지원 등 촬영이 끝나고 마무리까지 워낙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나열하기도 힘든데, 거의 1년을 함께 해오면서 작품을 같이 만들어 간다고 느낄 수 있게 인간적인 지원을 해주신 부산영상위원회 팀장님들과 박준우 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만약 예산의 제약이 없었다면 모든 촬영을 부산에서 진행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부산에서의 촬영은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전국 어디를 찾아봐도 촬영스튜디오에서 숙소까지 5분 만에 출퇴근이 가능한 도심형 스튜디오는 없다. 해운대에 있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영상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스튜디오가 너무 작다고 느껴진다. 한국영화가 성장할수록 해외 자본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도 함께 들어온다. 즉, 규모는 몇 배로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왠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있는 주차장이 너무 커보이지는 않는가. 쉽지는 않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를 증축하여 국내외 영화인들의 고충이 덜어지면 좋겠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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