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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라는 공포 [도가니]가 지역을 재현하는 방식 , 손남훈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

<도가니>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과 법정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쉐들이 종합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영화 <도가니>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도 벌써 4년 전 일이다. 새삼스럽게, 이미 유행처럼 지나가버린 이 영화를 지금 와서 들먹거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 좋은 기억도 아니고 이미 끝난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 눈앞에 놓인 골치 아픈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예전 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를 굳이 들추어낼 필요가 있는가? 이 영화가 지적했던 해당 이슈에 대한 법적 절차들은 이미 끝이 났고 문제를 일으켰던 학교 또한 폐교 조치됨으로써 일단락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그럼에도 이 지면에서 <도가니>를 거론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제기되었던 수많은 이슈들 중에서 무언가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한 가지가 빠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가니>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과 법정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쉐들이 종합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이 가상의 ‘무진’을 넘어 현실의 ‘광주’를, 나아가 장애인 인권이나 사회복지와 같은 즉각적인 이슈들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화의 독특함이 관객들을 겨냥했고 수많은 이슈들을 생산해냈던 근저에는 영화적인 ‘생경함’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4년 전에 이미 ‘끝난’ 이 영화를 우리가 다시금 호출하기를 저어하는 이유 또한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감각했던 공포의 면면이 상기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년 전, 우리는 이 영화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보았다. 영화가 목적하는 바는 여기에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 강인호 역을 맡은 공유가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 <도가니>를 읽고 영화화할 결심을 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정의를 어느 정도 환기할 수 있다고 환상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과 학교 폐쇄라는 결론을 통해, 또 일명 ‘도가니법’이라는 방법을 통해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공포영화의 맥락으로 이해되기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소설 <도가니>가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 심리와 하나로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서사의 다양한 벡터를 통해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어려움을 토로해냈다면(주인공 강인호는 도망치듯 서울로 떠난다), 영화 <도가니>는 ‘시청각매체’로서의 특성을 살려, 일부 특권층의 도덕적·윤리적 문제를 ‘변태’의 이미지로 둔갑시켰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재현했다. 그리고 이는 문제를 상기하고 접근하는 과정 자체의 어려움을 환기해주었다(주인공 강인호는 민수의 영정을 들고 울부짖듯 문제를 제기하지만,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다). 소설에는 없는 장면인, 연두가 교장을 피해 화장실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슬그머니 나타나 연두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는 교장의 맨얼굴은 우리가 지금까지 외면하고자 했던 특권층의 시선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지방’의 교육·치안·종교·사법 권력과 결탁한 특권층과 변태를 동일화시킬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공포는 더욱 증폭될 수 있었다. 반대로, 무기력한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특권층의 태도에서 우리의 경각심 또한 커질 수 있었고 그러하기에 그토록 이슈가 되어, 모델이 된 실제 학교 관계자들에게까지 사회적 응징을 가할 수 있었다.

도가니

도가니 SILENCED , 2011   네이버 영화정보 보기
개요 : 드라마 한국 125분 2011 .09.22 개봉
감독 : 황동혁
출연 : 공유(강인호), 정유미(서유진)
등급 : [국내] 청소년 관람불가

더욱이, 영화는 관객의 공포심을 절대로 희석시켜주지 않았다. 만약 이 영화가 취했던 법정 다툼 모티브가 ‘문제 제기-문제 해결-구원’으로 이어지는 서사과정의 일환이었다면, 우리가 지금껏 할리우드영화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보아왔던 낭만적인 해피엔딩의 하품 나는 이야기들과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매우 영리하게도, 온갖 권력들이 상호 결탁하여 공적 복수가 저지되어버린 결과를 보여주면서, 비극적인 죽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민수의 사적 복수만이 유일하게 행할 수 있는 행동임을 알려주었다. 이 말은 곧, 아무런 문제 해결 방법을 영화가 제시해주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 영화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결국 문제 제기는 있으나 ‘해결-구원’은 불가능하다는 냉소가 이 영화의 전반에 깔려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덧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냉소주의’가 곧 현실에 대한 공포에 기원하고 있음을 영화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만다.

장소가 학교에서 배로 바뀌었을 뿐, 이와 같은 공포는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사건으로 반복됨으로써 우리에게 다시금 엄습해왔다. 사건은 있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사태를 냉소하며, 그렇게 봉합된 사건으로 말미암아 후유증은 언제나 피해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버리는, 똑같은 구조가 반복됐다.

직면한 사건을 회피하고 제3자로 객관화하려는 태도가 낳은 냉소. 그러나 냉소가 사건의 보편적인 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공포를 제거해주지는 못했다.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던 우리에게, 아이들이 끔찍하게 학대당하는 장면을 거의 아동포르노에 가깝게 재현했던 영화를 본 관객에게, 공포를 냉소화해버린 봉합의 기술은 더 이상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세월호와 ‘무진’은 새삼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과 영화 <도가니>가 공히 전제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공포가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 서사의 근본 축에서 작동하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은 그 무엇. 그것은 ‘지방’에 대한 ‘중심(서울)’의 공포이다.

<도가니> 서사의 진행 축은 강인호를 중심인물로 내세우며 진행된다. 장애인학교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밝혀내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은 ‘서울에서 내려온’ 강인호다. 처음에 그는 학교 내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쳤지만, 곧 학교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문제를 제기하면 할수록 학교 바깥의 교육 권력, 행정 권력, 치안 권력, 종교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아가 재판을 통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을 때, 그가 확인하게 된 것은 사법 권력조차 여기에 결탁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지방’의 모든 권력은 ‘토호’들의 범접할 수 없이 단단한 인맥들로 얽혀있으며 그러하기에 문제 제기와 해결이 불가능한 구조임을 독자와 관객은 강인호의 시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중앙’에서 내려온 이지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주인공은 ‘지방’에서 관행처럼 내려오는 썩어빠진 권력 시스템에 맞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방’은 ‘중앙’에게 마치 ‘무진’의 안개가 그러하듯이 철저하게 본모습을 가리고 있으며 공론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침묵(이 영화의 영문제목은 Silenced이다Silenced이다)만이 강요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중앙’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정의로운 데 반해, ‘지방’은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반이성적이고 무능하며 진실을 은폐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중앙’에게 ‘지방’은 그만큼 미지의 공포를 안겨주는 그 무엇이다.

(2011)

<도가니>(2011)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노루가 치어죽는 장면과 민수 동생이 기차에 치이는 장면에서 제시된 교차편집은 지방으로 ‘좌천’된 서울 사람의 불안과 공포를 무의식적으로 반영한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그리고 그 막연한 공포는 ‘지방에서 일어난’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하며 혐오스러운 사건을 주인공에게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현실의 공포로 강렬하게 당도한다. 지방에 대한 중앙의 공포는 그렇게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물론 ‘지역’을 재현하는 많은 영화들에서 역설적으로 ‘지역’이 없는 예는 무시로 존재한다. 부산을 소재로 1,000만이 넘게 본 영화 <해운대>(2009)만 하더라도, ‘서울 사람’ 김휘(박중훈 분)는 이지적이고 냉철하게 과학적 근거를 따짐으로써 지진을 예측하는 예언가의 위치를 점하며, 이유진(엄정화 분)은 부산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를 주도하는 세련된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에 반해, ‘부산 사람’ 최만식(설경구 분)이나 강연희(하지원 분)는 ‘부산적인 것’이라고 가정되는 인물상, 즉 사직야구장에서 선수들에게 욕을 하거나 매일같이 해산물이나 취급하는 ‘열등한’ 존재들로 재현된다. 김휘의 예언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지방 토호’들의 몰락은 이 영화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정확히 재현되고 있는 서울-부산, 나아가 중앙-지방의 선명한 이분법을 매우 강고하게 전제하고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동네 양아치에 불과했던 오동춘(김인권 분)이 쓰나미 이후 영웅이 된 상황도 지방의 비이성과 편견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가 재현하는 ‘지역’이 그저 중앙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는 ‘지방’일 뿐임을 확인한 데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가니>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방이 중앙의 시각에서 공포스러울 수도 있음을 알려준 최초의 명확한 사례일는지도 모른다.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되며 냉소는 너무 많이 아는 데서 비롯된다. 너무 많이 알기에 행하지 않는 냉소도 문제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편견 안에서 대상을 떼어놓으려고만 하는 공포도 그리 마뜩찮은 타자에 대한 주체의 태도다. 이는 공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허무주의에서 비롯된다. 타자를 모르기에 저어하는 공포도, 타자를 잘 알기에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냉소도 우리가 만든 환상을 먹고 더더욱 몸집을 불리며 무럭무럭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목숨을 건 도약’으로 견고한 허무의 벽을 깨부수는, 지역을 상상하는 실재의 윤리가 아쉽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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