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부산아시아영화학교 배너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영화부산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영화부산

채플린이 다시 호명되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호명(Interpellation)은 대개 나 자신이 하는 것보다 당하는 것이 그 주된 특징이다.

채플린이 다시 호명되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호명(Interpellation)은 대개 나 자신이 하는 것보다 당하는 것이 그 주된 특징이다. 왜냐하면 호명을 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불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나 각종 모임에서의 출석시간을 상기해보라. 호명을 당하면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서게 되는 것처럼, 개인은 자신을 성찰하기보다는 호명에 반응하는 작은 주체로 전락하게 된 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호명’은, 자본이나 국가가 그들의 지배적인 문화나 이데올로기를 일상적으로 꾸준하게 ‘부드러운 테러(문화사회학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용어)’를 가하면서 우리들을 불러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리마스터링되어 우리 앞에 다시 선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은 이러한 호명과는 사뭇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된 때는 언제부터일까?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마지막 무성영화인 <모던 타임즈Modern Times>(1936) 는 1936년, 그리고 그의 최초의 유성영화인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1940)는 1940년에 상영되었지만, 이들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으로 수입·상영된 때는 1988년이었다. <모던 타임즈>가 국내에 처음 기사화된 때는 1939년이었고, <위대한 독재자>는 1940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국내에 정식으로 상영되기까지에는 약 4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이는 찰리 채플린이 1953년 영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걸린 19년의 기간보다 더 오래 걸린 시간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던 매카시즘의 광풍보다 더한 국내의 분위기가 작용한 터였을까? 아무튼 이들 작품의 수입과 상영에는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영향력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모던 타임즈>와 <위대한 독재자>의 재상영에 대한 씨네필들의 환영은 앞서 말한 위로 부터의 호명의 성격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표현처럼 영화는 마치 종교처럼 씨네필이라는 사도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이들에게 있어 영화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채플린의 영화에 담겨있는 애수와 자본주의의 질주가 가져온 소외, 그리고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밑으로부터의 호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은 그의 <모던 타임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던 타임즈>에서 말하는 ‘현대(Modern Times)’란 어떤 의미일가? 예컨대 선사시대에 살았던 인간도 자신이 몸담고 있던 당대를 현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중세의 한가운데 살았던 사람도 자신의 시대를 그렇게 규정했을 것이다. 지금 현재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당대적 상황일까? 만약 현대를 이와 같은 상황적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를 역사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대답은 달라진다. 근대사회라고도 불리는 현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태동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근대시민사회라고도 일컫는 자본주의는 정치적 이념으로는 자유민 주주의, 경제활동의 기축으로서는 이윤의 추구로 대별된다. 영화 <모던 타임즈>는 이와 같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침체기의 한국경제와 너무나도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혼신의 힘으로 내달려 동료들을 밀치며 닫히기 직전의 공장 문에 가까스로 들어서는 찰리의 모습은, 구직은 개인의 능력문제이지 사회적 제도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로빈슨 크루소적 인간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12_2영화의 주된 시대적 배경이 되는 공황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저 자본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작업을 꾀하게 되는데(영화에서는 자동화된 일관작업공정인 컨베이어벨트와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의 도입으로 암시된다), 이 과정은 노동강도의 강화와 대규모의 정리해고를 낳는다. 새롭게 도입된 노동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찰리는 갖은 실수를 저지른 끝에 해고가 되고, 자신의 일상을 지배하던 단조로웠던 작업과정(스패너로 나사 죄기)은 그를 끝내 감옥으로 들어서게 만 든다. 우연히 마약을 들이마신 찰리가 흉악범(?)들을 처치하고, 교도소장의 방에서 귀부인과 차를 마시는 장면은 도리어 우리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하게 만든다. 영화에서의 공황이 던지는 두 번째 의미는, 경제적인 공황은 반드시 여타 사회부문에도 이를 전염시킨다 는 것이다. 특별 석방을 거부하는 찰리의 몸짓은 오히려 바깥사회가 더 큰 감옥일거라고 생 각하는 심리적 공황상태이며, 마지못해 나서게 된 거리의 모습은 또한 어떠한가? 일자리를 달라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시위는 골목골목마다에서 벌어지고,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들의 사이렌소리와 호각소리가 어지러운 가운데, 찰리에게 다가온 봉변은 또 다른 매카시즘, 즉 <레드 헌터The Redhunter>(1991)였고 <지슬>(2013)이었다. 우리도 흔히 보듯이, 트럭에 잔뜩 실린 원목 끝에는 사람들이나 차들이 조심하라는 표식으로 붉은 천을 매달아두는데, 영화에서 코너를 돌던 트럭에서 이 깃대가 그만 떨어지고 만다. 찰리는 이 깃대를 주워들고 앞서가는 트럭기사에게 돌려주려 외치며 뛰어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위대의 맨 앞에 서게 되고 이러한 해프닝은 그를 시위의 주모자로 내몰게 된다(영화는 흑백이지만 필자에게는 분명 이 깃발이 빨간 색으로 읽혔다). 그는 다만 종차(從車)하였을 뿐이었지만 ‘종북(從 北)’화 되어버린다.

12_3어느 영화이든지 영화에서 묘사되는 사회는 크게 둘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사회 속의 개인’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개인 속의 사회’가 그것이다. 물론 이 둘은 항상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굳이 나누어보면, 사회 속의 개인은 그 구조가 요구하는 규율에 행위자가 어떤 의미에서든 복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개인 속의 사회는 주어진 사회구조가 갖는 부당성에 대한 행위자의 능동적인 개입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때, 지금까지 얘기 나눈 이 영화의 전반부는 전자에 해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리는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사회에 어떻게 개입하였을까? 여자 ‘장발장(?)’인 폴레트와의 만남으로 미국식(채플린 자신은 영국출신이다) 가족주의로 흘렀다든지, ‘세상 밖으로’ 떠나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우울한 영혼들의 방랑’이라고는 얘기하지 말자. 실제 영화 속의 채플린 모습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떠돌이 찰리’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공황시대 떠돌이들의 모습은 둘로 대별된다. 트램프(Tramp) 로 불리는 떠돌이와 호보(Hobo)로 일컬어지는 떠돌이가 그것이다. 대개의 영화관련 글들에서는 떠돌이 찰리를 트램프로 칭하는 경우들 이 많다. 그러나 채플린이 출연한 영화 속의 떠돌이는 트램프적인 삶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트램프는 무위도식의 떠돌이를 뜻하는 부정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웰먼의 <베가스 오브 라이프Beggars of Life>(1928)나 스티븐 소더버그의 <리틀 킹King of the Hill>(1993)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호보들은 떠돌이 생활 중에도 가능하면 노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Miss Little Sunshine>(2006)의 아비게일 브레슬린이 출연한 패트리샤 로젬마 감독의 <킷 키트 리지: 아메리칸 걸Kit Kittredge: An American Girl>(2008)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찰리와 폴레트의 동행은 또 다른 연대를 위한 첫 여정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아이들을 위한 복지(<키드The Kid>(1921)), 부의 아름다운 축적(<황금광 시대 The Gold Rush>(1925)), 참다운 사랑(<시티 라이트City Lights>(1931)), 그리고 반인종주의와 민주주의 확산(<위대한 독재자>) 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bfc


Gallery

많이 읽은 글

최근 포스트

인기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