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부산아시아영화학교 배너

자유를 얻다. 금정산성에서 – 영화부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늘 겸손하다. 그러기에 보는 이의 마음을 넌지시 열어준다.

녹음이 짙고 하늘이 푸르른 날에 부산의 산 중 대표격인 금정산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왁자지껄 삶의 현장 같은 구포시장 건너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엑서더스(Exodus)를 위해 산성마을로 가는 버스에 몸을 담았다. 화명동까지의 거리를 지나는 동안에는 건축물로 즐비한 도시 풍경에 무덤덤했지만, 마침내 버스가 북구보건소 방향으로 해서 애기소가 있는 대천천 계곡을 따라 오르는 순간 푸른 녹음이 주는 자연의 싱그러움에 불편한 기분도 잠시, “와~!” 하는 탄성이 절로 쏟아졌다.

멀리 고당봉이 지척인 가운데 화명수목원과 금정산성의 서문을 잇달아 지나 성 안의 마을 금성동 주민센터 부근에 내려 잠시 오르다 보면 동문에 이른다. 그만큼 동문과 서문의 거리는 짧다. 반면 남문과 북문의 거리는 배 이상이나 길다. 이러한 형태로 볼 때 둥근 장방형의 일반 성곽과 비교하면 금정산성은 남과 북으로 기다란 산성으로 규모 면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면적이 넓지만,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이유는 임진왜란도 아닌, 정유재란도 아닌, 병자호란 이후에 축성된 성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 동문에서부터 북문까지 이어진 길을 어떤 의미부여 없이 최대한 느릿느릿 걸었다. 물론 빨리 걸을 이유도 없었다. 다만 걷는 동안 맨 먼저 두 칸짜리 작은 집 4망루(望樓)를 만났다. 망루는 길게 이어진 성곽에서 주변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초소와 같은 곳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걷고 있는 금정산성 길은 백두대간에서 한 맥을 이루는 낙동정맥 구간으로 금정산의 의상봉과 원효봉 사이를 걸으면서 두 대사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와 남한산성을 생각했다.

45일 동안 인조의 나라, 해발 500m에 축성되어 그리 낮지 않은 성, 특히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기 위해 인조는 남한산성의 정문(남문)이 아닌 서문으로, 죄인이기에 용포도 입지 못하고 파란 청나라 병사의 군복을 입고, 말도 타지 못하고 걸어서 지금의 서울 잠실역 부근 석촌 호수 주변 삼전도비가 있는 곳에 도착, 신하의 예로 세 번 절하고도 모자라 아홉 번이나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도두(三拜九叩頭)라는 수모를 당한 곳이다. 이때 한 나라의 국왕으로 군주로서 패자로서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나는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성과 성을 지났다. 높은 산에 축성되었다 해서 이름 지어진 금정산성과 같이 한양 도성에서 가까운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 평편한 평지에 축성되었다 해서 평지성이라 부르는 순천의 낙안읍성이나 천주 박해지 혜미읍성, 평지에서 시작해 점점 산으로 올라간다고 해서 평산성이라 부르는 대표적인 고창의 모양성이나 수원화성, 그리고 동래읍성을 비롯하여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잘 모를 뿐 여타의 성터는 무너져 세월의 무심함에 잊혀가고 있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달리 동남해안을 따라 즐비한 우리의 성이 아닌 적들의 성 왜성이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특히 울산의 서생포왜성이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에 금정산성을 거닐면서 바라다본 사방은 막히지 않고 열려, 영혼도 바람도 자유로운 망루에서 바라본 북쪽은 해발 802m의 고당봉이 위용을 갖추고 있었고, 동쪽은 아홉산과 오륜대의 회동수원지가, 남쪽은 광안리와 해운대의 푸른 쪽빛 바다가, 서쪽은 강원도 태백으로부터 천삼백 리를 유장하게 흘러온 낙동강이 대자연의 파노라마로 조망되는 풍경이었다.

그랬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늘 겸손하다. 그러기에 보는 이의 마음을 넌지시 열어준다. 이는 올려다볼 때의 불편함이 주는 싸늘한 시선이나 배타적인 눈빛이 아닌 따뜻한 마음이 가슴에 전류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류 속에는 양극과 음극이 흘러 에너지를 만들고 불을 밝히듯 서로 다르지만 다른 것이 만나다르지 않은 하나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알았다. 올려다보는 불편함이 없다면 시선의 권력과 같은 도심의 고층건물 사이로 흐르는 별빛과 달빛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정녕 금정산성에서 내 마음을 빼앗아 버린 건 수많은 아픔의 세월과 역사의 틈새라 할 수 있는 성벽과 성벽 사이에서 백성들의 생명력처럼 피어난 작은 들꽃이었다. 어떤 비바람에도 눕지 않고 한 해 살이로 또는 여러 해 살이로 세상을 이어온 들꽃은 비록 가꾸어 놓은 화초에 비해 보잘 것은 없을지라도 매우 신비로웠고, 앙증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들꽃에 한마음 내려놓고 산과 성을 뒤로하는 길 내내 민들레 홀씨처럼 어디론가 훌훌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바로 금정산성의 넓은 품에서 얻은 자유였다.
bfc


Gallery

많이 읽은 글

최근 포스트

인기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