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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화펀드 전망과 과제

부산 영화펀드 전망과 과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다. 돈을 모르면, 알고 싶지 않다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다. 돈을 모르면, 알고 싶지 않다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 지난 6월 9일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개최한 시네토크에 강사로 초청된 이준익 감독의 말이다. 엿새 전인 3일 열린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제작비 5억 원짜리 저예산영화 <동주>(2016)로 영화부문 대상을 받은 ‘명감독’의 말은, 청중들에게 뜻밖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보려는 꿈을 품고 이 감독의 영상미학이나 연출관을 들어보려 현장을 찾은 20대 젊은이들로서는 말이다. 하지만 안다. 영화계 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말이 진실임을. 19세기 말 등장한 영화는 당대의 문화예술과 기술, 자본이 융합해 만들어내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상품이다 .

눈을 부산으로 돌려보자.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부산영상위원회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와 촬영지원 · 영상정책 기구가 되었다. 부산시는 부산을 이끌어갈 전략산업 가운데 영화영상산업을 빼놓지 않는다. 영화의전당을 비롯해 이미 건립한 영화영상 관련 하드웨어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글로벌종합촬영소 같은 중후장대형 하드웨어가 또 추가된다. 자본과 인력이 집중돼 있는 서울에 비해 후발주자인 부산으로서 하드웨어 기반을 넓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략이다.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산업이 일어나진 않는다. 인력과 콘텐츠, 자본이 조화를 이뤄야 영화는 완성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두된 것이 부산에 기반을 둔 영화펀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정부가 운영하는 펀드 외에 지역적 공공성을 갖는 펀드를 만드는 일이다.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 지역 영화펀드의 첫걸음

1부산영상위원회는 촬영 유치와 4억 원 안팎의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하는 기획개발·제작지원 사업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영화제작 초기 기획개발 과정에 도움을 줌으로써 향후 촬영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지역 장편(독립)영화의 제작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적이 분명한 사업이었다. 영상위는 로케이션 유치를 더 활성화하는 것과,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지역 제작사를 부산으로 유치하는 데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지역성을 갖는 펀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임 허남식 시장 때 ‘영화도시 부산’을 선포하고, 하드웨어 구축에 한창 열을 올리던 부산시도 영상위로부터 펀드 구성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이런 문제점을 알게 됐다. 2013년 7월 그 첫 성과가 나왔다.

부산시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손을 잡고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를 출범시킨 것이다. 시 출자 30억 원, 제협 주요회원사들이 함께 만든 배급사 리틀빅픽쳐스 15억 원, FC네트워크 2억 원, 운용사인 유니창업투자 3억 원. 이렇게 해서 50억 원짜리 펀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촬영 유치와 제작사 유치라는 목적에 맞춰 지원 조건을 부산 촬영 70% 이상, 본사 지사 특수목적법인(SPC)이 부산에 사업자등록을 둬야 한다고 내걸었다. 하지만 첫 투자(10억 원) 작품으로 선정한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2015)이 부산촬영 비율을 맞추지 못해 투자금을 반환하면서 첫걸음이 삐끗했다. 하는 수 없이 부산 촬영 비중을 50%로 낮췄다.

그 이후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의 지원을 받아 개봉한 영화는 <오피스>(2015), <쓰리 썸머 나잇>(2015), <퇴마: 무녀굴>(2015), <엽기적인 그녀 2>(2016) 4편이다. 이 가운데 <오피스>는 2015년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4편 모두 작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흥행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지역 제작사가 참여한 작품도 김휘 감독이 이끄는 K프로덕션의 <퇴마: 무녀굴> 뿐이다. 촬영과 제작사 유치라는 공공성 있는 목적보다 펀드가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시하는 수익성 측면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는 점은 향후 이런 펀드의 지속가능성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부산시가 영화펀드를 처음 시작하면서 무리한 투자를 하기 어려웠다는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펀드 규모가 50억 원 정도라면 상업적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대작영화에 메인 투자자로 들어가기는 어려웠을것”이라며 “펀드 창립 조합원인 리틀빅픽쳐스 대표가 중간에 교체되고, 펀드 운영 책임을 진 제협 집행부 일부가 바뀌는 등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지역성을 갖는 영화펀드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는 의미를 갖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일정 규모와 상업성·지역성을 함께 구현할 수 있는 펀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두됐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전국 단위로 확산시키기 위해 재벌기업들을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2014년 9월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부산에는 지역 기반이 두텁고, 영화투자배급사와 극장 체인을 함께 갖고 있는 롯데가 왔다. 2015년 3월 센터 개소 이후 유통과 영화, IoT(사물인터넷)를 특화시켰다.

덩치 키운 창조영화펀드, 그리고 완다펀드

22016년 3월, 롯데엔터테인먼트 100억 원, 부산시 60억 원, 부산은행 40억 원,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10억 원으로 ‘부산-롯데 창조영화펀드’가 결성됐다. 210억 원에 달하는 큰 규모다. 투자 대상과 비율은 부산 프로젝트 25%와 중·저예산영화 20%, 다양성영화 5%, 그 밖의 상업성이나 작품성 있는 한국영화 50%다. 부산 프로젝트는 부산 업체가 참여했거나 제작한 프로젝트, 부산으로 이전한 제작사나 부산에 소재한 제작사와의 공동제작 프로젝트, 부산 촬영 비중이 전체의 20% 이상인 영화 중 하나의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중·저예산영화는 순 제작비 36억 원 이하인 한국영화, 다양성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 인정 심사 기준에 부합하는 비상업 영화를 말한다. 지원 조건에 명시된 것처럼 부산 프로젝트의 인정 범위는 매우 넓다. 부산 로케이션 20% 조건만 맞추면 부산 업체가 제작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부산 프로젝트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로케이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부산 제작사를 공동 제작 프로젝트에 끼워넣으면 된다. 들러리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200억 원이 넘는 큰 펀드가 만들어졌는데 정작 지역 영화사들에게 아무런 제작 경험도 제공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지역 영화계 관계자는 “펀드 운용사는 안정적 수익을 위해 철저하게 안정성과 흥행 가능성 위주로 투자 대상을 심사하기 때문에 부산지역 영화계가 전략적인 투자 유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3부산시와 중국 완다그룹이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맺은 뒤 협의를 진행해 온 완다펀드도 연내 결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부산시 25억 원을 비롯해 부산지역 기업과 기관이 500억 원을 모으고, 완다그룹이 500억 원을 모아 1,00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펀드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부산시는 세계 최대 영화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 한국영화와 부산영화 프로젝트가 진출하는 데 이 펀드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월 완다그룹 영화부문 사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이 부산시를 방문해 주요 쟁점 사안에 대한 협의를 하고, 지역 영화인프라를 둘러보고 갔다. 부산시 관계자는 “몇 차례 더 협의를 진행한 뒤 늦어도 올해 안으로 펀드 출범을 공식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화펀드만으로 제작 기반 확충?

앞서 지적했듯 펀드 투자는 가장 기본적으로 수익이 목적이다. 펀드에 공공 예산이 들어가면 수익의 바탕 위에 공공적 목적이 부가된다. ‘영화도시 부산’을 목표로 하는 부산시가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와 부산-롯데 창조영화펀드에 90억 원이라는 예산을 내놓은 이유는 촬영 유치 활성화와 제작 기반 확충에 있다. 전국 지자체가 부산의 뒤를 좇아 영상위원회를 만들어 촬영 유치에 애를 쓰고 있지만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물 로케이션에 있어 부산이라는 도시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각 기관의 협조와 시민 지지, 원활한 시스템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문제는 제작 기반 확충이다. 영화를 기획하고 만드는 업체들이 많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펀드가 하고 있는 것처럼 지원 조건에 부산 제작업체 참여를 일정 비율 이상 의무화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이야기를 기획하고 발굴할 수 있는 지역 기반 제작사가 너무 부족하다. 부산지역 영화사 대다수는 독립·예술영화에 특화돼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부산영상위원회가 시행하는 2억 원 안팎의 제작지원 사업에 지역 영화계가 길들여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 제작사를 부산으로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한 영화감독은 “생활 기반을 하루아침에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들도 직장이 있고 학교도 있는데 나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불확실성을 감수하기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개인적 사유를 떠나더라도 영화투자배급사와 작가, 감독, 배우가 가까이에 살며 수시로 의논하고 ‘작당’할 수 있는 수도권의 이점은 포기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로는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 사례에서 보듯 1,200억 원이 넘는 펀드가 지역 제작사에 아무리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 펀드들이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역량 있는 이야기꾼 키워야

제작사라는 기업이 결국 영화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기획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 있는 작가와 감독, 프로듀서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결국 이는 인재의 문제로 귀결된다. 김휘 감독의 제안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콘텐츠 팜’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콘텐츠 팜은 대략 이런 형태다. “수도권에는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있는데 이 사
람들을 부산으로 데려오는 것은 가능하다. 작업 특성상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데 그들에게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창작 환경과 일정 수준의 처우를 보장하면서 부산에서 창작 작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년에 한 편씩 작품을 내놓도록 하고, 지역 작가 지망생들과 팀을 이뤄 멘토링을 하게끔 하면 경쟁력 있는 작품도 나오고, 지역 창작 인력 양성도 동시에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자원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웹툰, 만화, 판타지 소설,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 콘텐츠들을 공공적인 하나의 플랫폼에서 공유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작은 이야기 소재가 서로 융합하며 다른 장르에서 작품성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지역 창작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부산영상위원회가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시행하는 ‘스마트콘텐츠 인력양성(부산지역 영화 기획 · 개발 워크숍)’은 또 하나의 제작역량 강화 사업으로 주목할 만하다. 지역 제작사 역량 강화를 위해 수도권 투자 · 제작사와의 협력 사업도 필요하다. 지난 4월 창조영화펀드 주관으로 수도권 제작사,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이 부산지역 영화 프로젝트 담당자들과 1:1 면담을 갖고 각 기획에 대한 평가와 조언을 주고받았다. 이날 참여한 부산지역 영화 작가와 감독, 프로듀서들은 주류 상업영화 투자배급사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었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지역 제작사 역량 강화의 핵심은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렸고, 이는 교육과 교류를 통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보다 궁극적으로 부산에 기반을 둔 투자배급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인수 부일영화연구소 소장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기업이 투자배급사다. CJ · 롯데· 쇼박스 · NEW, 이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 외에 국내에 메이저라고 할 만한 투자배급사가 없다. 영화도시 부산이라면 지역 기반 투자배급사 설립을 고민해 볼 때도 됐다. 펀드는 5~6년 운영한 뒤 청산하면 끝이다. 확실한 지역 기반을 갖고 수익성을 거두면서도, 지역 영화산업 육성이라는 공공적 목적을 보다 추진력 있게 중장기적으로 담당해낼 주체가 바로 투자배급사일 수 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발족시킨 영화영상산
업발전협의회도 부산 기반 영화펀드와 투자배급사 설립 움직임과 관련해 관심을 모은다. 이 협의회는 상의 회원사 가운데 영화산업에 관심이 많은 기업 20여 곳으로 구성됐으며, 지역 기반 투자배급사, 제작사 설립을 중장기 목표로 하고 있다. 펀드의 한계를 넘어 지역에 기반을 둔 투자배급사를 만든다면 중장기 계획을 갖고 밀도 있는 사업 추진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영화인력들을 교육하고, 수도권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경험을 쌓게 하는 역할을 투자배급사가 부산영상위
원회 같은 공공기관과 분담해 훨씬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도 있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와 감독, 프로듀서들이 부산에서 육성되고, 그들의 영화가 스크린에서도 환영을 받는다면. 이런 영화인들이 제작사를 만들어 부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면 수도권 제작사 유치에 목을 맬 이유는 없다. 지역 영화펀드와 투자배급사는 이렇게 자라나는 싹을 위한 훌륭한 거름이 될 것이다. 자본과 좋은 인력, 훌륭한 콘텐츠가 있으면 ‘영화도시 부산’이라는 작품은 만들어진다. 부산에 무슨 투자배급사냐고, 황당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에 관한한 부산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온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영화부산

 


이호진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IMF 구제금융사태 딱 1년 전인 1996년 초겨울 운 좋게 부산일보에 들어갔다. 평탄한 성장기를 보냈지만 노조 지부장을 하면서 해고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남들은 외유내강이라지만 늘 스스로를 경계에 세운 채 좌고우면한다. 영화 담당 기자와 영화연구소 부소장을 겸하고 보니 이 또한 경계선 위다. 경계에서 넘어지지 않고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것 또한 ‘운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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