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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의 영화공원] 2019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에 관한 잡담

[정한석의 영화공원] 2019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에 관한 잡담

2019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에 관한 잡담

2019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에 관한 잡담

 

지난 2-3년 간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직후면 그해 부산에서 관람한 인상 깊은 한국영화들에 관하여 후기를 작성하곤 했다. 부산영화제가 동시대의 한국영화를 발견하고 주목하게 하는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딱히 그런 명료한 명분을 가져서는 아니었고, 이상하게도 그냥 늘 한국영화는 가까이 있으므로 신경이 쓰였고, 개인적으로 마음을 흔드는 작품들이 있었으며, 무언가 한 마디라도 보태고 싶어지곤 했다. 대략 4-5편으로 추려낸 뒤에 그 영화들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적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약간 달라져서 방식도 다소 달라져야 할 것 같다.

하필이면 왜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기념비적인 이 해에(그러니까 100년에 단 한 번 돌아오는 해에),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초유의 일이 벌어진 이해에(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진 해에), 게다가 그런 점들 때문일 텐데, 부산영화제 역사상 가장 많은 한국영화 상영작이 상영된 올해에, 그러니까 이모저모로 온통 한국영화에 관심과 초점이 쏠린 올해에 나는 왜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를 맡게 된 것이냐고 실없는 농담을 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몇 달이 지나갔다(때문에 죄송하게도 이 지면도 잠시 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에 이런저런 계기를 통하여 올해 선정된 한국영화들에 관한 생각들을 부족하나마 피력해 왔다. 각 작품들에 대한 짧은 감상문은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 있다. 그리고 예컨대 한국 동시대 영화의 다양한 지형과 초상을 보여주는 파노라마 부문에 관한 생각은 영화제 데일리 지면에 짧게나마 밝힌 바 있다. 지금은 진지하게 작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잡담식으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비교적 신인 감독들이 많은 뉴 커런츠 부문과 비전 부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후기다. 그러니까 이 글은 냉철한 평론가가 아니라 영화제라는 한 기간 동안 함께 어울리며 지내고 몇 가지 일들은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 어느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작성되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은미>, <하트>, <루비>, <바람의 언덕>, <노가리>, <비밀의 정원>은 수상하지 못했고, <경미의 세계>, <69세>, <럭키 몬스터>, <에듀케이션>,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매의 여름밤>은 수상했다. 그중에서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3관왕을 <남매의 여름밤>은 4관왕을 차지했다. 영화제 후반에 이르러 각종 심사단의 기류가 감지될 때 쯤,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남매의 여름밤>이 이미 2파전을 겨루는 양상이었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물론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전할 일이다. 하지만 수상의 유무가 이 작품들의 질적 유무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구태여 강조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다. 요컨대 아직은 밝히기 어렵지만, 올해 부산에서 수상하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 몇 작품은 부산을 통해 알려진 뒤 벌써 해외 영화제에서 초청 연락을 받았거나 이야기 중이다)

찬실이는 복도많지

비전의 밤 때 거듭 이름이 불려서 단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느라 혼이 쏙 빠져 있던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과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의 모습은 상이했다. 김초희 감독은 “여러분 영화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시겠지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등과 같은 여유 있는 말로 벅찬 감정을 대신 표현했고, 윤단비 감독은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이름이 거듭 불리자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보여서 보는 사람들까지 찡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수상 소감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인상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도 함께 감격해 있느라 잘 듣지 못했던 탓이다.

영화에 상을 수상한 감독조합상 심사위원들의 말을 들어보자.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실패라는 밑거름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영화로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재기발랄한 영화적 상상력, 세련된 유머와 따뜻한 정서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사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남매의 여름밤>은 사람은 상처와 관계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 섬세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연기와 그 연기를 끌어내는 감독의 집요함, 세대를 초월한 삶의 통찰이 돋보이는 점을 높이 사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폐막식 리셉션장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김초희 감독에게 내가 했던 당부의 정확한 문장을 나는 기억해 내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의 요지는 이러했다. 아마도 당신의 영화적 재능을 주류 영화계의 누군가는 알아볼 것이다(김초희 감독은 벌써 주류 제작사와 작업을 논의중이다). 다만 그때에도 당신의 영화가 지금의 장점들을 끌어안고 당신만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그 자리에서 김초희 감독은 시원하게 씩 웃으며 그런 건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투의 답변을 주었다. 나는 그 웃음의 시원함을 믿으려 한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부산영화제가 후반 작업을 지원하는 ACF 지원 당선작인데, 당시 심사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 한 가지는 이 영화가 아시아 영화사의 위대한 선배 감독들의 방식에 너무 근접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점을 답습으로 볼 것이냐, 재능으로 볼 것이냐는 쟁점이 제기된 바 있었다. 나는 지금도 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몇 가지 일들도 두서없이 떠오른다. 상 하의는 평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었지만 신발은 분홍색 삼색 슬리퍼를 신고(맨발이었던가, 아니었던가?) 관객과의 대화 무대에 오른 <하트>의 정가영 감독의 차림새가 유독 눈에 들어왔고 웃음을 유발했다고 내가 말하자, 기억나진 않지만 누군가 이렇게 반문했다. 그건 혹시 자신이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천재형 인간이라고 포장하기 위해 공공적 관습을 의도적으로 깨고 있는 노련한 퍼포먼스 같은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정말 그런 것일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그 반문이 정가영 감독의 영화에 대한 어떤 설명되기 어려운 장단점의 지점과 연관되는 것 같아 귓전에 오래 맴돈다. 궁금한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정가영 감독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노가리

<노가리>의 젊은 감독 박민국과 그 친구들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그대로 쾌활하고 활기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 영화의 ‘저질스러워서 매력적인 쾌활함’에 위험하게 한 표를 던진 사람으로서, 그들 영화와 그들 자신의 쾌활함이 지나친 성공과 출세의 욕망으로 변질 되지 않고 창작 자체의 삐뚤빼뚤한 에너지로 뻗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무 젊으니 급하게 느껴질 것이고 급하게 느끼는 나머지 좋은 것을 버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인생 훈수를 둘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실은 없으므로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몫일 것이다.

럭키몬스터

<럭키 몬스터>의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는 예상치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한 중년의 관객이 손을 들고 “이런 이상한 영화를 왜 선정했느냐?”고 모더레이터인 나를 겨냥하여 질문을 던졌다. 관객과의 대화 중 마주하게 되는 돌발적인 질문자들을 한 두 번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날 숙련된 모더레이터 답지 않게 얼마간 자제력을 잃었고 정중한 설명 대신 약간 흥분에 찬 어조로 응수하게 되었다. 자세한 상황과 말들을 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작품 변호의 성격을 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 터져 나온 큰 박수 때문에 나는 오히려 내가 질문자를 민망하게 만들게 된 모더레이터로서의 큰 실수를 범했음을 깨닫는 동시에 이 작품의 이상함에 동조하는 관객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많다는 프로그래머로서의 기쁨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그 질문자의 말도 맞다. <럭키 몬스터>는 이상한 영화다. 때로 누군가에게는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반대의 불만을 이 영화에 약간 갖고 있다. 나는 <럭키 몬스터>를 만든 봉준영 감독의 영화가 이상하다고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의 영화가 더 이상한 쪽으로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에게도 직접 전한 말이지만, <럭키 몬스터>의 후반부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남기는데 오히려 이상함의 기력을 잠시 정리 정돈하면서 일종의 장르적 관습을 차분하게 기재해 넣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날에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무대에 함께 서 있던 배우가 감독을 향해 독백하듯이, 아니 실은 모두 다 같이 들으라는 듯이, “(누군가 감독 봉준영은 바보라고 말하자) 아니야, 봉준영 바보 아니야”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그 말이 우리 감독 이상해서 정말 천재야, 하는 식으로 들리도록 유도하는 재치있고 친근한 우스개였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에듀케이션>은 개인적인 예상대로(?) 일반 대중들에게는 각광 받지 못했고 눈 밝은 영화 전문가들 소수에게는 격한 환대를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김덕중 감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몇 년 전 어느 단편영화 심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 한 가지 생각났다. 심사위원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아주 이상한 영화가 한 편 있고 그 영화의 매력도 감지할 수는 있겠는데 당장에 그 영화를 선택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에도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그 자리의 심사위원들은 말했다. 비록 오늘 이 자리에서 선정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언젠가 이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 재목인 것 같다고. <꿈꾸는 나무>라는, 포털 사이트의 정보에도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편 영화를 두고 있었던 일이다. 그 일화를 들려주었을 때 김덕중 감독은 정말 깜짝 놀라면서 수줍어했다. 김덕중은 <에듀케이션>이라는 아주 기이한 수작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쁘게 입증해 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수수하고 겸손한 감독의 태도인데, 자신이 완성한 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일 때마다, 이 사람은 겸손함이 지나친 것인지 혹은 정말 잘 모르는 것인지 혼동될 정도다.

에듀케이션

영화제가 시작되고 젊은 감독들을 이런 저런 자리에서 만나다가 은연중 감지하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시험을 준비하듯이 예상 답변지를 가늠하며 영화제 출품을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올해 상영된 어떤 영화의 재능 넘치는 젊은 감독은 내게, 새로 프로그래머를 맡은 당신이 쓴 글을 검색해 보았더니, 온통 홍상수, 홍상수, 홍상수, 만 나와서 내 영화는 떨어졌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고백해 왔다. 나는 그의 오해가 무너진 것처럼 그 밖의 누군가의 모든 전략도 무용해지기를 바란다. 지금 이 말 속에서 나의 핵심이란 단순하다. 지금의 한국 젊은 감독들의 영화가 최대한 정답에 신경 쓰지 않는 오답이 되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

좀 엉뚱하게 끝내고 싶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잠깐 유행한 위험천만한 놀이가 한 가지 있다. 당시 시험의 마지막 몇 문제는 대개 주관식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누가 더 엉뚱한 답안을 적어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들은 하려고 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그래서 평범한 학생들 중에서도 일말의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해당 문제의 답을 모르는, 그래서 그 답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나름대로 괴롭지만 한 편으론 우리가 꼭 그렇게까지 괴로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응수하는 객기를 발동할 줄 아는 문제 학생들 정도가 모종의 자괴와 유희를 섞어서 제출하던 엉뚱한 답안지의 제출 형식이 있었다. 물론 선생님의 무서움 정도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면서 영향받는 그런 약간의 비굴함과 비겁함이 곁들여진 반항이었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 탕평책을 써서 나라의 당파적 정쟁을 다잡은 임금은 누구냐 하는 질문에 ‘장국영’이나 ‘주윤발’이라고 적어 내거나, 답이 –1이나 3 등 숫자로 답해야 맞는 수학 주관식 문제에 ‘마징가’라고 적는 다던지… 그 유행은 한동안 간간이 이어졌다. 어떤 선생은 호되게 매를 쳤다. 하지만 어떤 선생은 꼭 그 답을 소리 내어 부러 읽어 주었다. 그는 그때 일종의 관객이었을까. “야, 이 자식아, 주관식 2번 답이 마징가야?” 하면서 그도 즐겼던 것 같다. 그런 오답이 읽히는 순간이면, 이상하게 누군가 그렇게 오답을 당당하게 작성할 수 있고 누군가는 또 웃을 수 있고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성사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통쾌하게 느껴졌다.

물론 사정은 다를 것이다. 정답이 있는데 몰라서 오답의 재치를 발휘했던 그런 예를 끌어다가 나는 지금 과장하고 미화하고 있다. 다만 더 많은 오답을 기다리는 마음에 억지로 끌어다 놓았다. 독창성과 개인성으로 가득한 오답으로 언제나 놀라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사실이다. 프로그래머도 관객도 영조대왕이나 3이나 –1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을 그 답안지 안에 마징가나 장국영이나 왕조현을 적어 넣어서 우리를 마침내 감동시킬 수 있는 감독들의 작품이 있다면 그건 정말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