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계속 질문해 보겠습니다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계속 질문해 보겠습니다

계속 질문해 보겠습니다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을 중심으로 연재를 청탁받았지만, 개봉 상황에 따라 다른 길로 수차례 빠기도 했다. 좌충우돌이었다. 마지막 글도 그럴 거 같다. 특정 영화를 말하기보다는 최근 필자가 비평과 관련해 경험한 몇 가지 일을 전하려 한다.

하나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처음 쓰는 영화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여 간 비평 워크숍을 진행한 일이다. 워크숍의 신청자를 받아 신영 극장에서 주말 저녁마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여자는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가 원고지 10매 분량의 글을 쓰고 다음 워크숍에서 필자와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준비하면서 기대감이 컸다.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지 선정하는 작업부터 비평적 시선이 개입되는 일이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참여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이기도 했다. 참여자의 글을 묶어 작은 책자로 만들어보는 게 최종 목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공간도 아닌 극장에서 시도하는 영화 글쓰기라는 점도 기대감을 키웠다.

우려도 됐다. 독립예술영화에 관심을 갖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 영화 113편의 총 관객 수는 110만 명으로 전체 관객 수의 0.5%에 해당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의 흥행으로 2.6%였던 이후 간신히 1%대를 유지하던 게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영화를 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글까지 써야 하는 워크숍인만큼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활동에 과연 관심을 갖고 올 사람이 있을까. 네 번의 주말 저녁 시간을 워크숍에 할애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워크숍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대단한 인원이 몰려서도, 참여자의 글 때문도 아니다. 참여자 수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그보다 더 의미 있었던 건 참석자의 출석률과 적극적인 과제 수행이었다. 워크숍에 참여한 저마다의 이유와 기대하는 바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참여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목표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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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워크숍을 듣게 됐습니까?”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나 감정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좀 더 잘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대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방금 본 영화에서 정말 내가 본 것이 무엇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복잡해진 머릿속과 이상한 감정의 상태를 짧게나마 갈무리해보고 싶다’는 의미라고 본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대답이었다. ‘질문’이라고 정확히 규정하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머릿속과 마음에서는 어느새 무언가가 발생하고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질문’으로 만들어 보기 위한 과정이 이번 워크숍이다. 그렇게 우리는 약속된 시간에 어김없이 극장으로 와서 누구의 질문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질문, 누구의 작업도 아닌 자신의 작업을 하기로 했다. 글을 쓴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의 활동이자 육체의 운동이 아닌가. 그런데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 개인의 활동이 얼마간 공동의 활동으로 이어진다. 공동의 활동을 한 이후 그 공동의 시간은 다시 개인의 글쓰기 작업에 얼마간 영향을 줄 것이다. 느슨하고 임시적이지만 집단적인 활동이 극장에서 벌어지고 진행되는 것이다. 워크숍을 마치며 우리는 다시 극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약속의 날을 아직 구체화하진 못했지만, 영화를 사이에 두고 완벽한 타인이 다음을 약속하게 되는 일이란 흔한 일이 아니다. 운이 좋았다. 적극적이 관객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다시 이 관객들을 만날 날을 만드는 건 운에만 기댈 수는 없다. 글을 쓰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나와 극장이 질문해야 할 지점이다.

비평과 관련된 또 하나의 경험이 있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 영화제에서 기획해 진행한 포럼이 있다. ‘경험하지 않은,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에 관한 영화적 재현’이라는 주제로 <김군>(2018, 강상우), <리틀보이 12725>(2018, 김지곤), <기억의 전쟁>(2018, 이길보라), <나의 노래: 메아리>(2018, 정일건)를 상영했고 관련해 발제가 포함된 긴 포럼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역사적 과거,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제기해온 물음이다. 질문을 조금 달리해보고 싶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강상우 감독의 말에서 시작됐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영화 <김군>을 연출한 그는 “어쩌면 우리 세대의 무관심이 일베나 지만원 씨 등이 광주를 말하는 방식 이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겠더라. …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당위나 죄책감 없이 사진에서 출발하는 작업이라면 우리도 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사자성 너머, 역사적 책무에 짓눌리지 않은 이들을 ‘우리 세대’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 세대’는 어떤 방식으로 역사적 과거와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가. 비슷한 시기에 우리 앞에 도착한 앞의 네 편의 영화가 방법론적으로는 다르지만, 이 질문에 관한 나름의 대답을 찾는 길이 돼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창작자가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후속 세대로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건 이후의 기억 주체로서 자신만의 관점과 방법으로 역사적 사건에 접근한 경우인 거 같았다. 질문의 방향을 조금 달리함으로써 같은 영화를 다르게 보기를 시도했다.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한 영화를 묶어내 보고 담론을 만들어가 보려 했다. 꽤 많은 사람이 이 포럼에 참석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영화제가 비평의 장이 된다는 것, 관객과 창작자를 쟁점과 담론의 장에서 만나게 한다는 것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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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무주산골영화제는 ‘영화평론가상’을 신설했다. 영화가 영화제에서 한 번의 상영으로 관객을 만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비평적 관점으로 영화를 읽어보고 비평의 지면으로 영화와 관객의 접점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반영일 것이다.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도 ‘영화를 말하다’는 비평 기획을 준비해 상영과 비평의 연계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처럼 개인적인 몇 가지 경험과 영화제, 극장의 일련의 시도를 보면서 비평의 가능성과 비평의 확장 방식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글의 힘이 줄고 비평이 죽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장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비평과 비평적 관점과 시도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영화 글에 관한 오래되고 투박한 애정과 관심이 계속되기도 하고, 영화 시장의 장기 침체 속에서 나름의 자구책으로 되레 비평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는 것이다. 비평과 관객, 비평과 극장, 비평과 영화제, 그리고 비평과 시장에 호응과 상응에 관해서도 계속 질문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