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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욱의-씨네 잡학사전

장지욱의-씨네 잡학사전

키워드를 쫓다 만나는 영화들을 통해 별별 잡동사니 지식을 섭렵해보는 ‘씨네 잡학사전’

#키워드_남과 북

예측 불허 조마조마 기대 만발, 그래서 여느 영화보다 짜릿하다는 2018년의 한반도! 남과 북,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대한 예단이 난무하는 판에 편승해 간단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19-1정상회담 리허설썰! <나의 독재자>(이해준, 2014) 

이 영화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위해 북측 정상의 대역을 섭외했었다는 사실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실제 배경은 김영삼 정부 시절로 당시 회담은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역시 대역을 놓고 회담을 준비했는데 대역은 김정일의 사상이나 사고 방식, 제스처까지 학습한 뒤 북한과의 협상을 가상한 리허설을 실제와 흡사하게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대역은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맡았다고. 참고로 올해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동선, 회담 순서, 회담장 가구 배치를 비롯해 프레스센터였던 킨텍스와의 상황실 연결 등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점검과 리허설이 이루어졌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역 섭외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이병헌이 돌아다닌 ‘돌아오지 않는 다리’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

영화 속 수혁(이병헌 분)이 북한 초소로 오가기 위해 건넜던 다리는 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모티브로 한 설정이다. 원래 이름은 널문 다리로 한국전쟁 휴전협정 이후 포로 송환에 이용되던 다리였고 수천 명의 양측 포로가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한 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어 붙은 이름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과 북측 인사의 서울 방문이 이 다리를 거쳐 이루어지면서 올해의 판문점 정상 회동 때와 같이 국민적인 각광을 받았고, 4년 뒤인 1976년에는 북한 측이 미군 장교를 살해한 ‘도끼 만행 사건’이 이곳에서 발발하면서 다리 사용이 금지되는 등 남북 분단의 비극과 양측 관계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다리이기도 하다.

 

19-3평양미식회! 옥류관! <국경의 남쪽>(안판석, 2006)

평양직할시 중구역 대동강변 옥류교 근처에 위치해, 그리하여 이름도 옥류관이란다. 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속에서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그곳. 강변에 위치한 2층 한옥집에 1천 석을 갖춘 규모 덕에 엄청난 최고급 식당이 아닐까 싶지만 영화 속에서는 연인이던 선호(차승원 분)와 연화(조이진 분)가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였으니 북한 연인들의 냉면미식회 또는 평양미식회 장소라 할만하다. 88서울올림픽의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비대한 집둘기가 되어 도통 날 생각을 안 하는 시대에 새롭게 부상한 평화의 상징이 먹고 즐기는 냉면이 되어간다는 것은 누리고 즐기고픈 평화에 대한 염원이 묘하게 조응하기도 한다. 참고로 옥류관은 냉면으로 유명하지만 이밖에도 ‘고기 쟁반국수’, ‘녹두지짐’, ‘철갑상어힘줄탕’과 같은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고…

 

19-4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르다 <디 인터뷰The Interview>(에반 골드버그/세스 로건, 2014)

스위스 유학파, 농구광, 비행기 조종 자격증, 그리고 김정은 리더십이란 말까지… 유달리 그에 대한 정보가 넘쳤던 올해의 어느 순간을 되돌아보면 새삼 놀라운 일임을 실감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언제부터 그에 대해 알 수 있었는지, 혹은 알고 싶었는지…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붙었던 TMI(Too Much Information)는 TMI(The Most Interested)로 바뀌어가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전의 북한 1호는 세상에 어떤 이미지였는가? 이 영화에서는 미국 중심 세계관으로 인종 차별, 북한 독재 비판을 어지간히 유치하게 버무려 북한 1호를 그린다. 4년 뒤 우리가 보는 그는 사뭇 다르다. 최소한 두 가지는 확실하다. 그의 머리에는 뿔이 없었으며, 뿔 없는 그가 어떤 인물일지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는 시간을 지구상 모두가 똑같이 30분 넘게 가져보았다는 것이다(feat. 새소리).

 

가족을 보는 일이 평생의 소원이 되어버린 <국제시장>(윤제균,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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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영화 <국제시장>에서 등장하는 덕수(황정민 분)의 가족은 흥남철수 때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 가족이다. 영화 초반 흥남철수 장면은 한국전쟁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지휘하던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과 레너드 라루 선장이 한국인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 1만5천 명을 태워 남쪽으로 철수했던 극적인 사건을 그린다. 전쟁 속 온정이 이들의 목숨을 구했기는 하나 헤어진 가족을 눈앞에 두고 만나지 못한다는 허망한 슬픔을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 이후라도 조금 더 적극적인 상봉 정책을 펼쳤다면 좋았으련만 1988년 13만 명으로 추산된 이산가족 신청자는 2018년 절반 이상이 사망하고 현재 6만 명을 밑돈다. 그나마 남은 이산가족들의 평균 연령은 80세를 넘는다고.

 

19-6비전향 장기수, 까마득해져 가는 이름 그러나 <송환>(김동원, 2004) 

필자를 기준으로 해서 그보다 낮은 연령대의 세대에게는 점점 생소해지는 이름이 비전향 장기수다. 영화는 실제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한 송환 운동에 참여했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우선 그 뜻부터 살펴보면, 사상의 전향을 거부하고 수십 년간 복역을 한 북한 인사나 간첩, 군인 등을 일컫는다. 사상의 자유와 국가 안보가 대립하는 분단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수십 년을 감내해야 했던 그 인생을 가늠해보면 다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분단 비극의 상징일 것이다. 거기에 반공 이데올로기와 정치 문제 등이 뒤섞여 발생했던 간첩 조작 사건이라든가(<1987>(2017)에서 김윤석의 빨갱이 프레임과 일련의 조작들과 같은) 여전한 정치권의 이념 공방, 그 대가로 나 몰라라 팽개쳐지는 우리 삶에 대한 문제까지 엮어내고 나면 한국전쟁과 분단은 비극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끝없이 잡아끄는 암울한 유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