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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 장르의 관습에 고민한 자리

<암수살인> 장르의 관습에 고민한 자리

오늘의 주류 범죄 스릴러에서 보기 드문 태도, 대상을 다루는 데 대한 고민의 흔적, 장르에 기대하는 관습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는 영화의 시도들이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12-1<암수살인>은 오프닝 시퀀스를 제외하면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아슬아슬한 추격전, 엎치락뒤치락하는 몸싸움 같은 액션 없이 범죄 스릴러의 길을 간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허수진 살인사건의 범인 강태오(주지훈 분)는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 앞에서 체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을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희생자가 발생한 뒤 남은 증거들을 토대로 범인을 추적하는 수순을 밟는데, 이때 영화를 추동하는 힘은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암수사건, 즉 시체를 찾을 수 없고 신고 된 적도 없는 다른 살인사건들에 대한 자백이 선행하고, 거기에 의존해 역방향으로 희생자들을 추적하므로, 질문은 ‘희생자가 누구인가?’가 된다. 따라서 이 장르에서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흔한 요소들이 이 영화에는 부재한다. 대신 형사는 산더미 같은 기록들을 일일이 뒤져야 하고,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관련된 기억을 가진 증인과 참고인들을 만나며, 1%의 참이 있다고 생각되는 진술에 따라 온 무덤을 파헤쳐서 증거를 찾아야 하는 과정이 있다.

12-3서스펜스가 발생하는 지점은 주로 심문이 이루어지는 동안의 접견실과 취조실이다. 그 장소들은 마치 강태오와 김형민을 위해 제공된 연극무대를 연상시킨다. 원 샷 클로즈업으로 강렬하게 부딪히는 두 사람의 얼굴 숏들은 긴장감을 견인하는 장소다.
서로 다른 속을 가진 그들 사이에 오가는 치밀한 추궁과 멋대로 널뛰는 답변은 밀고 당기는 기싸움에 다름 아니다. 감정의 진폭이 큰 강태오가 자만과 과시, 조롱으로 주도하며 접견실을 한바탕 휘젓는다. 거기에 말릴 듯 말 듯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차근차근 수사에 임하는 김형민의 성격적 대비는 이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모두가 만류하지만 끈질긴 추적 끝에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던 자백들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없는 것은 액션만이 아니다. 살인 장면은 이 장르에서 곧잘 스펙터클로 기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희생자들을 중심에 둔 영화는 그들에 대한 존중을 배태한다. 죽음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는 말이다. 범행을 암시한 뒤 다음 숏에서 범행 이후의 장면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이용해 직접 살인하는 장면을 보여주길 꺼린다. 피 묻은 옷가지나 범행에 쓴 자동차를 유심히 바라본다든가, 증거를 인멸하려고 물건들을 태운다든지 살인을 짐작할 지표들로 대신한다. 물론 황칠규 살인사건처럼 생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사람의 실루엣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어둠 속에 범행이 일어나고, 이어 방화를 시도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잔인하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피가 어떻게 쏟아
지는지, 신체를 훼손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기회를 영화는 거부한다. 또한 전문가들이 ‘감정불가’ 판정을 내린 범인의 정신상태, 그의 비인간성에 대하여 관객의 동조를 구할 때도 영화는 최소한 살인 장면을 이용할 마음이 없다. 그것은 강태오의 과시적인 말투와 행동 속에 드러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죽인 거를 후회한단 말이가?” “아니! 하던 대로
(토막 살인을) 했어야 된다 이 말이죠.”

12-2정의감, 슬픔, 분노 등을 비롯해 이 장르가 극대화 할 수 있는 감정들도 강요되지 않는다. 실종자 오지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그의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경찰서에 찾아온다. 진행 상황이 궁금했을 것이다. 이 숏은 김형민이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는 데서 끝난다.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김형민을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다. 그는 투철한 직업의식 아래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도 중요하게 여기고 수사에 매달리지 거창한 정의감으로 무장한 영웅이 아니다. 필요하면 영치금까지 찔러줘 가면서 강태오를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도 못 받고 어디선가 구더기 밥이 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명색이 경찰인데 그게 쪽팔려서 집념을 꺾지 않는다. 그의 강한 직업의식은 칭찬할만한 것이지만 그가 영웅처럼 보이는 덴 새로 한 놈 잡아넣는 게 더 좋은 고과를 받는 이상한 체계와 거기에 순응하는 집단, 그리고 미제사건을 뒤져 자신들의 과오를 들춰낼까봐 그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료들에게서 기인하는바 또한 크다.

서부의 사나이는 마을에 평화를 가져오면 길을 떠나고, 누아르의 탐정은 사건을 해결한 뒤 쓸쓸한 사무실로 돌아온다. 강태오의 무기징역을 받아낸 김형민도 담담하게 일선에 복귀한다. 누구도 영화에선 정의가 승리했다고 기뻐하지 않는다. 이걸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지희의
행방을 찾아 낙동강 생태공원에 도착한 그의 얼굴엔 범인 잡는 재미나 보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누적된 피로와 책임감, 막막함만이 드리워져 있을 뿐. 길 위의 김형민을 두고 점점 물러나서 마침내 뭍에서마저 멀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얼마나 작고 고독한 존재인지를 조망한다. 그는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여전히 복잡한 감흥이 남는다.

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