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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1 -잉여들의 행진을 위하여

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1 -잉여들의 행진을 위하여

잉여는 위대하다. 잉여가 세상을 바꾼다. 잉여들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잉여 만만세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
영화계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러저러 휘적휘적 울라불라 얼기설기… 일상을 얘기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게도 “에효, 아직도 여전히 그러고 사는구나.”였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이러고 산다. 근데 그게 뭐?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렇다. 여전히 나는 잉여로 산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순간 번뜩이는 또 다른 생각. 그들, 내가 만났던 그 많던 잉여들은 어디로 갔을까? 01410. 모뎀 접속 번호를 누르고 엔터를 치면 특유의 음향이 들려온다. 곧이어 파란 바탕 화면 위로 흐르는 하얀 글자들. 우린 그때 밤새 채팅을 했다. 9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이 창궐하기 직전까지의 일이다. 영퀴(영화퀴즈)방에 들어갔고 상퀴(상식퀴즈)방에 들어갔다. 각종 소모임을 만들었고,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얼굴을 맞대야 하는 오프라인 대신 우린 온라인을 택했다. 그곳엔 온갖 잉여들이 모여 있었다.

잉여… 쓰고 난 나머지
나눗셈을 하고 남겨진 ‘나머지’의 수. 남아도는 인생들, 사회적으로 불 필요한 인간들. 손창섭의 소설제목을 굳이 빌려 오지 않아도 파란 화면 속 익명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지금은 흔하디흔해진 그 이름, 잉여였다. 잉여들에겐 나이와 계층, 성별 등이 중요치 않았다. 온라인에 접속만할 수 있으면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파란 바다 위에서 우린 하얀색 글자들을 토해내며 대화에 대화를 거듭했다. 영화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문화에 대해 떠들어댔다. ‘남이 하면 중독, 내가 하면 몰입’이란 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오타쿠, 혹은 컴퓨터 채팅 중독자라고 불렀지만 적어도 우린 그때,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고 있었다. 문학과 철학을 논하던 소모임. 나는 그곳에 몇 편의 시를 쓰기도 했고 짧은 단편소설을 올리기도 했다. 그중에서 어떤 소설은 훗날 내 단편 영화와 장편 시나리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모임의 오프 모임에 나오라는 성화(?)에 용기를 냈다. 홍대 어디쯤에서 만난 우리는 술을 마셨다. 게시판상에서의 앙금을 풀고, 글과 실제 이미지의 차이를 확인했으며, 그렇게 몇몇은 연애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결혼한 커플이 있다는 소식도 그 후에 알게 됐다. 그러나 역시 나는 모니터 속에 있는게 편했다.

사회의 시선, 부적응자
한번은 같은 소모임에 있던 친구와 간만에 얼굴을 마주 보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밤새 채팅을 하느라 엉덩이에 종기가 나 수술을 해야만 했고 칼을 대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채팅방에 나타났던 터였다. 간만에 채팅방에 나타난 그의 아이디가 반가워 커피라도 마시자고 한 거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종기라는 건 조선시대로 따지자면 아침부터 밤까지 앉아서 나라 걱정하는 왕만 걸리는 ‘양반병’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는 시시껄렁한 내 농담에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던 그가 말했다. “아빠가 나더러 사회부적응자래.” 미술을 전공하던 녀석은 정규대학에 연거푸 떨어지고 전문대에 입학한 상태였다. 나 역시 재수 끝에 모 대학에 입학했지만 전공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던 상태였다. 학점은 선동렬 방어율보다도 낮았다. 취직이나 할 수 있을지, 아니 대학을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같은과 친구 중엔 나를 조교로 알고 있는 애들도 꽤 있었다. 학교 가는 날보다 방구석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더 많았으니까. 뭔가 쓰긴 쓰는데, 다닥다닥 자판치는 소리는 나는데, 컴퓨터 화면은 파란색, 그리고 글씨는 하얀색. “하긴…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포장마차에서 헤어지며 아마 그런 얘기를 내뱉었을 거다. 컴퓨터 앞에서는 행복했지만 사회에서 우리를 바라볼 땐 그저 사회부적응자, 그러니까 잉여였으니까. 그럴수록 더 파고들었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내 이야기를 주절댔으며 영화평을 써댔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노래들을 소개했고, 소개받았다. 부모님은 내게 왜 토익이나 토플을 보지 않는지 물었다.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간다던 유학은 진짜 가는 건지, 아니 가고는 싶은 건지, 도대체 밤마다 뭐하느라 잠을 안 자고 오후 두 세시 쯤에나 일어나 샌드위치 조각을 우적거리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지 물었다.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충분히 행복 했으니까. 그 행복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른들은 젊은 애들이 왜 저렇게 방구석에 처박혀 있나, 그러니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지, 손가락질을 해댔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도 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잉여들은 나라를 바꾸었다. 그 잉여들이 몇 년 후, 모임을 만들었고 인터넷으로 대선 운동을 했다. 그 모임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키보드질을 해댔고 오프에선 자원봉사를 했다. 결국, 우리가 원하던 사람을 기어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 잉여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세상의 암적인 존재, 나눗셈을 하고 남게 된 수, 사회부적응자, 잉여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 아무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엉덩이 종기 난 잉여 친구는 잉여로운 생활 끝에 설치 조각가가 됐다. 같은 채팅방에서 영퀴를 하던 분 중에는 현역감독이 된 분도 있고, 모 영화의 프로듀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분도 있다. 잉여들은 대중문화평론가, 시인, 기자, 구성작가, 공연 기획자, 출판사 대표, 대학교수 등으로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 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잉여를 자임했던 어느 분은 훗날 소설가가 됐고 그의 소설은 영화화됐다. 수많은 잉여들이 쏟아낸 잉여물들이 각종 콘텐츠로 빛을 발했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잉여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잉여로운 삶,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여유로움, 그 상상들이 자신만의 이야기와 결합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왜 스펙을 쌓지 않느냐고, 왜 시간을 그리 헛되게 보내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바삐 돌아간다. 누구나 1등을 해야 한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사는 사람들을 과연 사회악이고 부적응자이며 잉여인간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그냥 그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안 될까. 조금 게으르고 잉여로우면, 정말 세상에 뒤처지게 되고 급기야는 이들 때문에 사회의 발전이 더디게 될까. 그 잉여들이 정말 나눗셈을 하고 남겨진 ‘나머지 인생들’일까.

그러므로 계속되어야 한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동네 산책을 나갔다. 단골 식당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버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언제나처럼 눈인사를 나눈다. 69년산 다 쓰러져가는 이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도 여전하다. “오늘 은 택배가 없네?” 힘차게 외치는 경비 아저씨의 눈엔 “저 사람은 대 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 대낮에 어슬렁거리는 걸까?” 물음표가 잔 뜩 묻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4층에 사시며 아파트의 배관 공 사나 문제가 있는 곳을 고쳐주시는 아저씨를 만났다. 지난여름 장마 철에 집에 물이 새서 고쳐 주신 적이 있는 고마운 분이다. 아저씨가 묻는다.“ 근데 대체 뭐하시는 분이세요?” 나는 그냥 빙긋 웃었다. 지 금도 어디선가 암약(?)하고 있을 잉여들을 떠올리면서.

등산을 생각한다. 산에 누가 빨리 오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루트로든 오르기만 하면 되는거다. 초시계로 누가 정상에 빠르게 오르는지 기록을 재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루트를 개발해 내는 사람에게 주목한다. 잉여의 삶. 그들은 어쩌면 느릿느릿하지만 삶의 새로운 루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잉여로운 삶 이야말로 이야기를 만나는 가장 좋은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잉여는 상상을 낳고 상상력은 이야기를 낳는다. 잉여는 위대하다. 잉여가 세상을 바꾼다. 잉여들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잉여 만만세다.
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