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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4- 응답하라 동시상영관

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4- 응답하라 동시상영관

가끔은 옛것들이 그립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수년 만이었다. 어쨌든 성과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복도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부산에 가기 전, 이 오래된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낯익은 아저씨가 복도 천장을 뜯어내고 수도관을 교체하던게 떠올랐다. 너트를 잘못 조여 물이 새는 건가. 하여튼, 물살은 거셌다. 바닥에도 다 들어차 바지를 걷어야 할 정도였다. 천장 틈새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살은 마치 고급 갈빗집쯤에 실내장식된 인공 폭포 같았다. 박연폭포라는 타령이 절로 흘러 나왔다. 잽싸게 물길을 헤치고 현관문을 여니 복도에 고인 물이 흘러들어 집안에 들어차 있었다. 쓰레받기를 이용해 퍼내기로 한다. 아, 여독이 풀리지 않아 피곤해 죽겠는데, 저녁땐 또 약속이 있는데. 타령이 절로 나왔다. 박연폭포를 부르면서 물을 퍼내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 이 익숙한 동작과 상황이 떠올랐다. 기시감이었다. 언젠가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는 그 느낌. 언제였더라? 이렇게 물을 퍼낸 적이 있었는데? 아, 약속 장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떠올리고 말았다. 때는 대치동에 살던 중학생 때였다. 1층에 보신탕집이 있었고, 지하에 그곳이 있었다. 동시상영관!

그 시절의 탈출구
천 원에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던 그곳. 리비도를 주체 못 하던 사춘기 시절, 내 유일한 탈출구. 천 원을 내고 조악하게 만들어진 표를 받고 영사 기사 겸 극장주인 알프레도에게 다시 건네주고(참 요식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일단 들어가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담배도 마음대로 피울 수 있고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영화 두 편을 즐길 수 있었던 그곳. 절대 가선 안 될 것만 같은 그곳. ‘이곳부터 일탈을 허용합니다. 단 부모나 선생한테 걸리는 건 내 책임 아님.’이라고 쓰여 있을 것만 같은 입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입구를 넘어설 때의 이상한 쾌감을 주던 그곳은 바로 동시상영관이었다. 대개 상영되는 영화는 두 편이었다(특별한 날엔 두 편씩 묶어 네 편을 상영하기도 했다). 한국의 문예영화를 빙자한 소위 ‘벗는 영화’ 한 편과 마음대로 이름 붙인 외화 한 편. 중간에 쉬는 시간 10분. 휴게실에는 컵라면 따위를 파는 작은 매점이 있고, 소파 위엔 만화책이 널브러져 있었던 그곳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월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사람 하나 없는 낮에 들어가 저녁 늦게까지 처박혀 있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자연스레 알프레도 아저씨와도 친해졌다. “아저씨, 마흥식 나오는 영화 언제 또 틀어요?” 배우 마흥식은 곧 ‘퀄리티 인정’이었다. 외화는 관심 없고 문예영화가 늘 관심이었다. 얼마나 벗느냐는 곧 배우 마흥식이 결정해 주었다. 이영하나 이대근, 고(故) 임성민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도 꽤 벗기긴 했지만 마흥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고 기억한다(하지만, 임성민의 <애란>(1989)은 지금도 무척 애정을 갖는 영화다!).

(1986)

<영웅본색A Better Tomorrow>(1986)

탈출구에서 만난 주윤발
마흥식의 영화를 손꼽아 기다려서 금단의 선을 넘던 어느 날, 친구와 맨 뒷자리 의자에 몸을 파묻고 영화를 봤다. 영사기와 가장 가깝고 선생에게 잘 들키지 않는 최적의 자리였다. 드디어 ‘원하던 장면’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담배를 물었다. 그런데 저 맨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도 담배를 문다. 아, 한창 일할 시간에 이곳에 와 죽 때리는 저 중년의 신사는 누구시지. 아마도 직장을 잃어 가족들에겐 비밀로 한 채 시간을 때우러 온 모양이군. 뭐 그런 신파적 상상을 하고, 영화가 끝나고, 휴식시간을 위해 불이 켜졌을 때, 문제적 신사와 눈이 마주친 친구가 얼음이 된 채 나지막이 뇌까렸다. 아부지. 그분은 근처 중학교 야구 감독이었던 친구의 아빠였다. 우린…, 죽었다. 조용히 손짓해 휴게실로 우릴 불러낸 친구의 아빠는 맛동산과 환타를 사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불륜이라도 저지르다가 아들에게 걸린 양 그분은 꽤 조심스러웠다. “다음 영화…, 보고 갈 거냐?” 중저음으로 그렇게 물었을 때 난 나도 모르게 고개 를 끄덕였다. 친구도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아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건네준 뒤 돌아섰다. ‘휴, 살았다. 근데 왜 우릴 혼내지 않는 거지.’하는데, 순간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 우릴 향해 돌아선 친구의 아빠, 망설이듯 이렇게 말했다. “…엄마한텐 말하지 마라.” 우린 그 뜻이 무엇인지 차마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이젠 좀 알 것도 같지만. 그날, 우린 문제의 영화 <영웅본색>을 봤다. 다음 날, 학교에서 성냥개비를 물고 주윤발 형님의 흉내를 내며 줄거리를 읊어댔고 바로 그 주말, 우리 반 학생 거의 반을 끌고 그곳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마흥식이 아니라 오로지 주윤발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열광했고, 알프레도 아저씨는 신이 나서 우리에게 다음부턴 500원에 영화를 보게 해주겠다고 했다. 몇 주 뒤, <영웅본색>은 메인 상 영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친구의 아빠도 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뻔뻔스러운 생각도 스쳤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동시 상영관에서 봤던 외화 중엔 꽤 문제적 걸작들이 많았다. 우디 알렌 영화도 있었고 큐브릭과 스콜세지의 영화도 있었던 것 같다. 제목은 동시상영관 리그의 입맛에 맞춰 붙여 져서 훗날 같은 영화를 봤을 때 기시감에 시달리며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88년쯤이었나? 그러니까 중3 때쯤, 역시나 월말고사를 봤던 날 그 문제적 친구가 말했다. “개봉관 가지 않을래?” “야, 거긴 너무 비싸잖아. 영화도 한 편 밖에 안 해주고.” “김수철이 음악을 맡은 영환데?” “오오, 그렇다면 가야지. 무조건 가야지(난 김수철의 팬이었다. 밤이 되면 나타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에예예~).” 우린 버스를 타고 강남역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봤다. 한국영화인데 왜 개봉관에서 하지? 한국영화인데 왜 여자가 벗질 않아? 한국영화인데…, 왜…이렇게…재미있지? 여자도 안 벗고 내용도 좀 어려운데 왠지 모르게 사람 슬프게 만든 영화, 그래서 내 욕망에 불을 지른 영화. 그것은 <칠수와 만수>였다. 그 영화를 기점으로 나는 동시상영관엘 잘 가지 않게 됐다. <칠수와 만수>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21세기,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더 멋진 거짓말을 치며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건방진 꿈을 꾸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동시상영관과 알 프레도를 잠시 잊어야 했다. 충무로로, 강남역으로, 명동으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추억 속 동시상영관
고등학생이 되었다. 폭우가 쏟아지 던 어느 여름날, 왠지 감상적인 기분에 그곳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은마아파트 사거리가 물에 잠기고 상가 건물에 물이 들어찬, 대홍수 의 날이었다. 올림픽 때문이었는지 1층에 있던 보신탕집은 감자탕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폭우가 내리는 날이라면 학교 선생들도 훈시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아주 느긋했다. 더군다나 때는 여름방학이었으니까. 선생들도 방학은 즐길 테니까. 물은 극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거세게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무슨 계곡물 같았다. 꽤 두꺼운 극장 문을 여니, 알프레도 아저씨가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1988)의 알 프레도가 불과 싸웠다면 그는 물과 싸우고 있었다. 나도 말없이 그를 도왔다. 관객석으로 향하는 문 밑 틈에 걸레를 끼워 넣고(그 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은 눈물겨웠다) 필사적으로 알프레도와 물을 퍼냈다. 금세 온 몸이 땀에 절었다. 허리를 펴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물 위로 맛동산 봉지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보았다. 친구 아빠가 생각났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퍼내고 또 퍼내도 계단으로 천장으로 쏟아지는 물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우린 한참 동안 말없이 물을 퍼냈다. 집안에 들어찬 물을 푸면서 떠올린 날은 바로 그날이었다.

가끔은 옛것들이 그립다. 특히나 복잡한 시간에 멀티플렉스를 찾아야 할 때면(난 대개 사람 없는 시간에 영화를 보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꼭 그래야만 하는 때가 있다), 동시상영관이 떠오른다. 그 느긋하고도 은밀한 냄새, 차르르르 돌아가던 영사기 소리, 스크린 위에 겹치던 담배 연기, 당구장 짜장면보다 더 맛있었던 컵라면, 그리고, 친구의 아버지. 극장을 지키기 위해 물을 퍼내던 알프레도 아저씨도. 휴전선처럼 넘어가기만 하면 자유를 맛볼 수 있었던 그 짜릿함도. 그 느낌을 공유했던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 는 그 친구도. 모두 그립다. 우연히 얻어걸려 보고 또 봤던 주윤발의 영화들은 또 어떻고. IPTV 시장이 우주 팽창하듯 커졌다고 한다. 이 시대에 동시상영관을 만들면…, 별로일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버스가 멈췄고 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