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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 산다는 건 결국 즐겁게 견딘다는 것

하기호 감독의 스토리지- 산다는 건 결국 즐겁게 견딘다는 것

이왕 지사 삶이 견디는 것이라면 즐겁게 해학적으로 견디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지난 설에 있었던 일이다. (막 옹알이 단계를 지났다고 나 혼자 생각한) 둘째 조카에게 선언했다. “자, 여기 만 원짜리 한 장과 오만 원짜리 한 장이 있다. 퀴즈를 내도록 하겠다. 알아맞히면 (오만 원을 내밀며) 이걸 주고 (당연히 못 맞출테니 만 원짜리를 호기롭게 흔들며) 못 맞추면 이걸 세뱃돈으로 주겠다. 문제 나간다! 삼촌의 직업은?” 그러자 녀석은 “영화감독!”이라고 한 번에 맞춰 버렸다. “ 아냐, 틀렸어. 삼촌은 백수, 백수의 왕이다!” 텅 빈 지갑을 생각하면 애써 내 직업 같지도 않은 직업을 스스로 거부하며 이렇게 말하곤, 만 원을 줄 수도 있었으나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져 오만 원짜리를 쥐어 주었다. 실수였다. 내겐 여전히 옹알이 단계인 녀석이었는데. 어느새 다 커 버린 것이 다. 난 저돌적인 이 둘째 조카를 마음에 들어했다. 백화점에서 외국 여자에게 다가가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씨불였던 것이나, 맘에 안 드는 어른이 있으면 그냥 박치기부터 해대는 이 녀석, 제 형보다 외향적이라 바깥에서도 맞고 들어온 적이 전혀 없다는 이놈, 앞뒤 재지 않고 뛰어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에 받혀 보닛 위로 떨어졌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는(형수는 혹시나 머리를 다치지 않았나 CT 촬영에 MRI까지 찍었으나 멀쩡 했다고 한다. 박치기로 다져진 머리통인가 보다) 녀석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어젯밤, 이 둘째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식을 했다는 형의 연락을 받았 다. 세상에. 벌써. 이 녀석이 여덟 살이나 됐다니! 둘째 조카가 여덟 살이 되었다는 것은 곧 내가 데뷔작을 찍은지 무려 6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뜻한다.

무한반복의 시나리오 작업, 42.195km
사실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 특히, 감독들은 남들의 3, 4년을 1년 주기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나리오 기획을 거쳐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1년에서 1년 반, 캐스팅 과정과 투자 과정을 거쳐 영화를 찍고 개봉하기까지 (다른 감독님들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3, 4년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과거 어느 대선배 감독이 “나는 올림픽 감독, X감독은 월드컵 감독이야.” 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할 땐 진짜 그런가 하고 멍 때리고 있었는데 마흔이 넘고 두세 차례의 엎어짐을 당하고 나자(당했다는 말은 좀 말이 안 된다. 당해도 싼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 이게 정말 그런 거구나, 그렇게 시간이 가 는 거구나…. 올림픽, 월드컵 감독들은 ‘정말’ 제대로 일이 풀린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을 찍기 전, 그러니까 스물아홉 살부터 8년을 준비‘만’ 했다. 기획회의,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회의, 그걸 토대로 또 쓰고 기획회의, 그리고 또 쓰기의 무한반복! 그러다가 4년 동안 쓰던 시나리오가 회사가 합병되는 바람에 “없던 걸로 하지.”란 간단한 말로 엎어져 버렸다. 42.195Km를 실컷 달려 겨우 도착하려는데 눈앞에 보이던 결승점 자체가 없어져 버린 기분. 그래도 뭐 글을 쓰는 동안 많이 배웠으니까 자위하며 적금 들었다치자, 하기엔 너무나 지쳐 버렸고 화가 났다. 그래서 어쩌다 회사에서 던져 준 시나리오를 일주일 만에 각색한 게 <라듸오 데이즈>(2007)였고 영화를 찍었다. 나름 충무로에서 각광을 받고 있던 터라(?) 모두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었으나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그 엄지손가락은 중지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나는 시장에선 더는 섹시하지 않은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첨부터 다시. 인생은 무한반복! 이대로 너덜 너덜해져서 혼자 시나리오를 쓰다가는 폐인 되기에 십상이란 생각에 명석한 두뇌와 융통성 있는 사회성과 장차 프로듀서로서 합리적인 영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동료를 붙잡고, 대학원에 시나리오 전공으로 들어가 젊은 청춘들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동료 피디와 나는 그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동료는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작품의 프로듀서가 되었고, 나는 계속, 닥치는 대로, 데뷔 전에 익숙했던 그 속도보다 더한층 RPM을 올려 글을 써댔다. 둘째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알리던 어제 형의 전화는 사실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형이 내뱉는 문장 사이에는 “너, 밥은 먹고 다니냐?”란 뉘앙스가 풍겼다. 나야 실감을 못 하고 살지만, 형이 바라보는 나야말로 데뷔작을 찍은 이후 6년 동안 술 냄새만 풍기고 다니는 백수였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그냥 짧게만 대답했다. “어, 잘 먹고 잘 지내. 어젠 고기도 먹었고, 지금은 저녁 먹고 너무 배불러서 누워서 텔레비전 보고 있어.” (결코 짧지 않은 변명이려나)

단골 술집의 ‘칸트’, 제작자 L
“산다는 건 말이다. 결국, 견디는 거야.” 다소 꼰대스러운 제작자 L대표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영화에만 목숨 걸지 말아. 사는 게 별거 있나. 그냥 술 마시다가 기회가 생기면 서로 안 쪽 팔린 영화를 ‘가끔’ ‘열심히’ 찍으면 되는 거지.”술 병과 술잔 사이에 사는 제작자 L은 내 단골 술집의 ‘칸트’라 불리기도 한다. 같은 시간에 그 술집에 가면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똑같은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계신다. “대표님은 여기 가구예요?” 놀리기도 했지만 사실 그분의 말은 스티븐 킹의 명언과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인생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같은 뜻 맞나?) 수많은 술자리에서 서로가 주절대긴 했다만 산다는 건 견디는 것, 이라는 말은 또렷하게 머릿속에 담고 산다.

그새 함께 일하던 동료 피디는 어느 대작 영화의 프로듀싱을 마쳤다. 이야기 를 듣노라니 실로 어마무시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영화를 찍는 동안만 나는 수많은 기적과 우연들은 마치 그 친구가 전 인생을 통틀어 만날 기적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인생엔 기적 총량의 법칙 따윈 없다. 앞으로도 수많은 기적을 만날 것이고(그걸 타인들은 그저 ‘우연’이라 부르기도 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린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 것이다. 어느 날, 그 단골 술집에서 제작자 L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투자자 K가 나타났다. “어 형,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K형은 그냥 여기 있을 줄 알았다고만 했다. 사실 투자자 K형은 (나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제작자 L의 영화에 투자한터라 뭔가 상의를 하러 온 듯했다. 나는 (눈치 하난 기가 막히게)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술잔만 비웠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문득, K형은 저번에 보내주던 시나리오는 왜 더 이상 보내주지 않느냐 물었다“. 씨바 그냥 다 까였어, 형.” 했는데 K 형은 내 손을 잡더니 술집 바깥으로 불러내 담배를 달라고 했다. “그새 M작가와 각색도 더 했고 그랬는데…, 그냥 요즘엔 또 딴거 써요. 이거 쓰다가 저거 쓰다가 그래. 이걸 쓰고 있노라면 저거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보이는 거 같더라고. 저걸 쓰고 있으면 이게 왜 투자가 안 되는지 알겠고. 하하하.” 슬픔, 화, 우울, 분노, 이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은 ‘해학’으로 풀어야 한다고, 그래야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맘속으로 단단히 결심하고 살아왔던 터라 심드렁하게, 농담하듯 내뱉었다. 어쨌거나 K형은 그동안 각색했을 그 시나리오를 다시 보자고 했다. “읽고 나면 아마 하고 싶어 못 견딜 걸. 하하하.” 나는 너스레를 떨고 다음 날 숙취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 냈다. 일주일 후, 짧은 문자를 받았다. “재밌더라. 그냥 캐주얼하게 만나서 얘 기하자.” 캐주얼하게? 그래, 캐주얼하게 만나서 이번엔 안 되겠다, 다음에 같이 하자는 뻔한 얘기를 듣고 술 한 잔 얻어먹고 헤어지지 뭐, 하는 마음으로 진짜 캐주얼하게 머리카락도 정리 안 한채 동료 피디와 K형을 다시 만났다. K형은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냥 안 한다고 빨리 말해요 형. 그리고 그냥 술이나 한 잔 사줘,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찰나 돌직구가 날아왔다. “같이 도모해 보자.”

매 순간의 우연과 기적을 즐기며 며칠 후, 또 한 번의 각색고를 냈다. K형은 “좋다 정말. 이거, 같이 가자.” 했다. 캐스팅도 안 된 시나리오인데요? 동료 피디와 나는 멀뚱멀뚱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캐스팅도 같이 해 보자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 분명히 임자가 있을 거야!” 이런 우연이. 이런 기적이! 순간 둘째 조카가 떠올랐다. 앞으로 뭐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OO야, 우리 같이 즐겁게 삶을 견디자. 삼촌도 잘 견딜게. 매 순간의 우연과 기적을 즐기며 괴로워하지 말고 허허 웃으며 살아가자.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오지도 않은 미래 걱정하지 말고 지나간 건 지나간 일로 치부해 버리기로 하자. 그저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우연의 기적을 믿고 즐기자고. 내 둘째 조카처럼 넘어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크하게 일어서며.

견디기 힘든 날엔 단골 막걸릿집의 칸트 제작자 L을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 열에 아홉은 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앉아 함께 병맥주를 마신다. 영화 이야기, 여자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견딜 만 해진다. 가끔은 노래도 부른다. 다른 이들은 쟤네들은 세상을 견딘다면서 뭐가 저리 좋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세상을 견디는 방법이다. 이왕 지사 삶이 견디는 것이라면 즐겁게 해학적으로 견디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