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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레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레토>는 가끔 소름 끼치게 정교한 영화 형식을 경유해 음악의 속성에 닿아 가는 용감한 영화다.

img625악기 조율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고 세 여인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록 클럽 뒷문에 위치한 계단을 오른다. 카메라의 우아한 움직임 안에서 꿈결처럼 영화의 문을 여는 <레토>는 1980년대 초 구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록 클럽 안으로 우리의 시선을 견인해 간다. 이 숏의 몽환적인 움직임은 관객의 시선을 과거의 낯선 장소로 인도해 가는 많은 전기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무장해제된 듯 가슴이 설렌다. 라이브 하우스를 찾을 때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일찌감치 가슴이 쿵쾅대는 경험이 떠오르며 기분 좋은 기시감에 마음이 동한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장면에선 모종의 결기가 느껴진다. 공연에 늦은 세 여인처럼, 빅토르 최(유태오 분)라는 불멸의 록스타가 탄생한 장소에 너무 늦게 도착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영화가 관객에게 동행을 요청하며 조심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레토>는 빅토르 최와 그가 활동했던 레닌그라드 인디씬의 역사를 묘사하고는 있지만,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동행의 영화이자 고백의 영화다. 빅토르 최의 노래가 민중가요로도 불리며 그가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기 전, 구소련 뉴웨이브의 선구자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불리기 전의 청춘 빅토르와 동료들의 찬란한 시간에 바쳐진 영화인 것이다. 그렇게 되살아난 그들의 시간 안에서 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휘청거리게 된다. 하지만 그 감응이 매끄러운 음악영화, 혹은 촉각적인 생기를 지닌 청춘영화로서의 성취에 대한 반응이냐 하면, 그것이 요체는 아닌 것 같다. 레닌그라드 록씬의 동료들이 보내는 해변의 바캉스 장면들은 숨 막힐 듯 아름답고 얼마간의 해방감마저 느껴지지만, 어딘가 청춘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아 손끝이 간질간질해진다. 마찬가지로 당시 레닌그라드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록 음악에 맞춰 인물들이 당대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저항하는 퍼포먼스(해설자가 등장해 환상임을 환기시켜주는)를 펼치거나, 애니메이션과 짝을 이뤄 각개의
완벽한 뮤직비디오를 구현하는 장면들은 재기 발랄해 보이지만 흥미롭지는 않다. 양식의 경계를 허물며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프레임에 현현해 내려는 시도가 새롭게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img630이 영화에 진정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고요한 사내 때문이다. 빅토르의 멘토이자 친구인 마이크(로만 빌릭 분)란 사내. 그가 해변에서 처음 만난 빅토르의 노래 가사를 진중하게 읽어 내려갈 때, 사랑하는 여인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셰바움 분)와 빅토르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도 부드러운 얼굴로 불안을 덮을 때, 둘의 마음을 헤아리고선 처연히 홀로 빗속을 거닐 때, 훗날 빅토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보리스에게 빅토르의 멘토 자리를 넘긴 후 조용히 스튜디오를 빠져나갈 때, 이 고요한 사내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에 의식이 혼미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 마이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환상이며 낭만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애초에 <레토>는 나타샤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니 그녀의 사랑과 기억이 영화의 중추가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중요한 건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또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시대에 한껏 빠져들어 영화에 빛과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마이크가 빗속을 헤매고 집으로 돌아온 아침, 서서히 찾아든 햇빛 안에서 마이크와 나타샤가 서로를 달래주는 아름다운 장면은 감독이 가난하고 서러운 이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현현인 것 같다. 그 절절한 마음의 동행이 있기에 나는 <레토>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을 참기 힘들다.

빅토르의 사무치게 쓸쓸한 노래 <나무>가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 울리고 있고, 클로즈업된 빅토르의 얼굴 옆으로 불꽃처럼 살다 간 그의 생몰연도가 조심스럽게 비쳤다 사라진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관객석에 앉아있는 팬들과 동료들의 얼굴을 천천히 지나쳐 가며 마지막으로 공연장 한편에 서 있는 마이크와 나타샤의 얼굴에서 멈춘다. 마이크의 얼굴 옆으로 역시나 짧게 세상에 머물다 간 그의 생몰연도가 떠올랐다 사라지고 이내 곧 마이크도 공연장 뒤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나타샤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나타샤의 자리는 곧 우리의 자리이며 그녀의 얼굴이 곧 우리의 얼굴이다. 그렇게 영화는 군대, 알코올, 가난, 억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뮤지션으로서 생명도 짧았고, 오랫동안 생을 지탱할 수조차 없었던 레닌그라드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소박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영화처럼 용감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낭만이어도 좋고, 감상이어도 좋겠다며 흥청거리는 <레토>는 가끔 소름 끼치게 정교한 영화 형식을 경유해 음악의 속성에 닿아 가는 용감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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