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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익숙한 마주침

낯설고 익숙한 마주침

신비로우면서도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그래서 반가운 마주침이다.

img614<얼굴들>의 서사에서 확실하게 공유되고 있는 것은 인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기선(박종환 분)이 만나는 학교 행정실과 축구부 코치의 퉁명스러운 태도, 혹은 담당자와의 만남조차 어려운 비효율적 업무 구조, 축구부 진수에게 처한 경제적인 문제, 혜진(김새벽 분)이 자영업 준비 과정에서 마주하는 식당 종업원의 서늘한 대우와 리모델링 노동자들의 조금은 무책임한 언사,
택배 둘 곳을 헤매는 현수(백수장 분)의 열악한 택배 근로환경에서, 우리는 아주 사소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삶 가까이에 놓인 부당한 시스템의 조각들과 마주한다. 이들은 각자의 맥락 아래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조각들은 어떻게 엮일 수 있는가. 얼핏 <얼굴들>은 조각조각 난 숏들의 단순 집합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장면들은 느슨하게나마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 이 비선형적이고 파편적인 구성은 서로를 밀어내려는 배척의 성전이 아닌 떨어져 있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모색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다른 말로 하자면 가능성의 경계를 질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혜진이 사용하던 선크림이 진수에게로 건네어지고, 현수가 듣는다던 라디오가 진수에게서 다시 발화되는 등 사물의 반복, 혹은 학창 시절 축구 경기 중 진수에게 찾아왔던 팔 부상이 시간이 흘러 풋살 경기 도중의 다리 부상으로 모습을 살짝 바꾸어 다시 나타나는 상황의 변주, 혹은 진수에게 주어졌던 축구부의 역동적 움직임이 혜진이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 중년 무리의 건강댄스 참여로 이어지는 것처럼 <얼굴들>의 진행 흐름 안에는 묘한 방식의 전달이 거주하고 있다.

img610다른 말로 하자면 그것은 숏과 숏이 나란히 놓이며 발생하는 물리적 충돌의 몽타주가 담보할 수 없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몽타주이다. 하나의 세계에서 포착했던 것이 숏과 숏, 그리고 시간과 시간 사이를 넘나든다. 쿨레쇼프가 주창했던 몽타주의 즉물성이 아닌, 숏과 숏 사이에 공백을 메워 넣는다는 점에서 여백적 몽타주라 부를 수 있을 법한 <얼굴들>의 편집 방식은 투명하지만 분명히 실체가 존재하기에, 빈자리로서의 징검다리와 같은 묘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이 어렴풋한 편집은 우리가 ‘숏-리버스 숏’이라고 무심코 표현하던 두 세계에 놓인 연결의 견고함을 누그러뜨리지만, 결코 삭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선명한 고전적 몽타주로서는 도저히 환기될 수 없는 감각일 것이다.

기선은 사보 제작을 위해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그는 프레임의 바깥에 존재하지만 신체의 완전한 모습이 그 내부로 진입하지는 않는다. 그저 드문드문 손을 화면 안으로 드러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선명한 것은 나직하고 어딘가 위축된 듯한 기선의 목소리, 몸짓과 대비되는 그의 자신 있는 음성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프레임 너머에 있을 그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게 되지만, 이러한 미장센적 특징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이 장면이 탁월하다고 말하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 인상 깊은 것은 서사적으로 기선에게 불편을 끼쳤으며, 표면적으로는 명확한 음성과 비가시적인 형체로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한 이 남자가, 기선에게 행정실 직원 시절에 함께 시간을 보냈던 축구부 학생 진수를 다시 소개해준다는 점에 있다. 이는 영화에서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듯했던 진수의 존재를 재소환 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얼굴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장면과 장면, 세계와 세계를 가늘고 은근한 관계로 엮으며 그 마주침을 탐구한다.

그러니 이 조각들의 연결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파편적인 감상이 아니라 지금 화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연속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 어디에선가 존재했던 것으로, 요컨대 흔적화라는 변모의 과정을 마주하지 않으면 이 기묘한 다리의 구축은 불가능할 것이다. 차이를 감지하기 위해서 대립항인 반복이 필요한 것처럼, 비선형의 파악은 오로지 끊임없이 흐른다는 시간의 선형적 성질 위에서 비로소 감지될 수 있다.

img619그 흐름 안에서 <얼굴들>은 종종 비약되고 때로는 압축되는 시간을 제시한다. 특히나 기선과 혜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그 넓이에 있어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선에게 행정실 직원으로서의 시간과 사보 제작 업체에서의 근무라는 다소 긴 시간이 할애된다면, 상대적으로 혜진이 살아가는 시간은 식당 리모델링에 열중하는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배회하는 듯한 택배 기사 현수가 있다. 비단 택배가 지닌 전달의 속성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의 행적은 곧잘 영화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현수가 꽃집에서 꽃을 포장해나가면,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꽃의 사진을 촬영하는 스튜디오 현장이 보이고 이후로 사보 회사 직원으로 활동하는 기선의 행적이 나열된다. 두 장면에서 공통되는 것은 오직 꽃이라는 사물의 외양에 지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장면 사이에 상당한 시간의 도약이 실행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여태껏 행정실 직원으로 나타났던 기선이 뜬금없이 다른 직업으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나란히
놓인 두 장면은 표면적으로 화면에 연속해서 존재하는 꽃이라는 사물이 환기하는 현재적 순간과, 서사적으로 기선의 변화된 모습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비약이 공존하며 기이한 감각을 이끌어 낸다. 그런가 하면 그가 시종일관 품고 있는 택배 상자는 혜진에게 배달되는 택배 상자로부터 다시 연상되기도 한다. <얼굴들>은 혜진과 기선에게 부여된 길고 짧은 시간의 간극을 상상력이라는 환상적 도술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현수라는 인물을 통해 다분히 현실적 영역에서 느슨하게 관련시키고 있다. 그가 배송트럭에서 읽게 되는 누군가의 일기가 곧잘 영화의 장면으로 투입될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또한 박물관을 방문했던 경험을 적은 글쓴이가 여성임에도 그것이 남성의 목소리로 읽히는 것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의 가능성을 엿보려는 영화의 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인물 각자의 노곤하고 개인적인 고민과 난감함이 모호하게 엮이는 <얼굴들>의 구성에서는 예술적인 야심이나, 창의성을 갈구하는 작가의 부담스러운 자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이 다분히 일상적인 이야기는 거대한 예술적 블랙홀로 우리를 빨아들이지 않고,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시간 감각의 재구성으로 우리 주변에 놓인 삶에서 가능할 수 있는(<얼굴들>의 영제는 <Possible Faces>이다) 감각을 탐구한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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