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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다, 영화부산

나는 ○○작가다, 영화부산

그렇다. 인정한다. 나는 저질이다. 야설 나부랭이를 써서 한 때 잘 먹고 잘 살았던 그런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색장금이라고 합니다.” “네, 전 한성교입니다.” “아이쿠, 님이 빅맨님이셨군요.” 고깃집 동그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린 각자의 필명을 대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간첩 접선을 하는 양 비밀스러웠다. 누가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는 자리(사실 참석자들 모두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나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 소개했으니까). 총 다섯 명의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같은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얼굴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회사는 비밀스러웠다. 나는 그 회사 직원 중 백 부장을 빼곤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하는 일은 이러했다. 회사는 내가 쓴 글을 받으면 바로 입금을 한다(회사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게 한 때 유령작가로 활동했던 나의 마지막 남은 신뢰(?)라 믿는다). 나는 실적이 좋아 종종 보너스를 받곤 했다. 기본급은 A4 12장에 7만원. 거기에 그들이 산정한 기준을 넘으면 내 통장엔 인세처럼 보너스가 더 들어오는 식이었다.

그날도 사장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백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법인카드를 맡겼다 했고, 우린 처음으로 회식이란 걸 하게 됐다. 백 부장은 팔짱을 끼고 소주 몇 잔을 홀짝인 뒤 우리가 고기를 다 먹기도 전에 소주 몇 병과 고기 몇 인분을 추가 시킨 채 법인카드로 계산을 한 뒤 표표히 사라졌다. 처음엔 필명을 부르며 대화하다가, 불판이 식어갈 때쯤엔 “그쪽은 그럼 아직도 신춘문예를 준비 중이신 건가요?” “이쪽 판이랑 똑같네. 저도 아직 시나리오 쓰는 중이에요. 그대는?” “전 공무원 시험 준비합니다. 저쪽이랑은 다른 공무원 시험. 좀 급이 높죠.” 하면서 서로의 필명을 부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리는 끝까지 어색했다. 소주도 얼마 마시지 않았고 그저 질긴 고기만 몇 점 먹은 채 우린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아마 내일의 원고를 위해 다들 다시 책상 앞에 앉았으리라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는 법. 그렇다. 나는 야설작가였다. 때는 폴더형 핸드폰으로 ‘모바일’이라는 이름 아래, 막 새로운 콘텐츠의 물결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동영상은 통하지 않았다. 과금이 심하고 통신망이 느려 터져서 동영상 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콘텐츠 중엔 심리 상담을 빙자한 점보는 것이 가장 인기였고 수익성이 높다고 했다. 통화료 외에 부가료를 더 받는 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모바일 콘텐츠의 1세대라 감히 자부할 수 있겠다. 고백하건대, 3~4년 간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원고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아침엔 야설을 쓰고, 밤에 내 영화의 각본을 쓰는 식이었다. 주야야각, 이라고 해야 할까.

색장금은 내가 즐겨 쓰던 필명이었다(이때쯤이면 눈치 채셨겠지. <대장금>이 인기였을 때였다). 야설은 시리즈로 써도 무방했고, 단편으로 써도 무방했지만 시리즈로 쓰는 것이 더 유리했다. 하지만 그건 고수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시리즈는 소비자에게 한 편에 300원 정도와 부가세를 과금한다. 관건은 그 다음 편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일명 ‘쪼임’에 있었다. 일종의 독자와의 밀당이라고 해야 하나. 회사가 산정한 기준을 넘으면 300원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나는 마치 드라마를 쓰듯 다음 회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기술을 연마했고, 또 성공적이었다.

원고료는 꽤 쏠쏠하여 당시에는 빚에 쪼들 일이 거의 없었다. 적금이라는 것도 부어 봤다! 술도 양주를 마구 마셔댔고, 월세도 밀린 적이 없었으며 식당 메뉴판에서 가격을 보는 일도 없었다. 그냥 먹고 마시고 써대고였다. 그 와중에 내 시나리오는 어떡하지, 란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생활이 훨씬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엄마와 동생을 건사해야만 했다. 그래도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다. 다만, 시나리오를 쓸 때 자꾸만 섹스 신을 추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을 뿐(이런 정신적 고통은 산재 처리 안 해주나).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겨 목돈이 필요하면 허리가 부러져라 앉아 썼다. 그러면 한 달에 500만 원까지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재, 주제, 이야기, 단어… 모든 게 자유로웠다. 무제한! 법은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 당시엔 모바일 콘텐츠를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없다고 했다. 방송통신위원회건 공연윤리위원회건 문화부건 어디건, 법령이 없었으므로 우리 유령작가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느 날, 내 원고를 본 동생이 물었다(놈은 버젓한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었다). “형 너무 야한 거 아냐? 성기 정도로 표현해도 될 걸 왜 굳이 ○지라고 써?” 나는 동생을 쏘아 보며 되물었다. 코를 가리키며. “이걸 뭐라고 하냐.”
“코.” 눈을 가리키며. “이건?” “눈.” “근데 왜 ○지를 ○지라고 못해?!” 아, 이 무슨 홍길동의 호부호형적인 대화인가. 여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한글 자판을 마음껏 두들기며 나는 일종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인 쾌감 말고, 이 사람들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간단한 지침서였다. ○지를 ○지라고 쓰지 말 것. 너무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를 하지 말 것 등등. 아아… 드디어 법령이 마련된 모양이었다. 경고 조치를 당했다며 한 달간 서비스를 중지하지만 곧 재개될 터이니 안심하라는 친절한 공지를 회사의 이메일은 덧붙이고 있었다. 정말 한 달 뒤, 서비스는 재개 되었다. 단어를 어찌 바꿔 써야 하나 고심하기 시작했다. 일단 봉으로 가자. 봉을 쓰기 시작하자 또다시 제재 조치가 뒤따랐다. 하다못해 “에이… 그 프로그램을 왜 봐. 보지 말고 그냥 자지.”라는 대사 같은 것도 역시 걸리고 말았다. 아마 이 콘텐츠를 심의하는 쪽에서는 ‘○지’, ‘△지’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를 이용해 찾아내는 게 분명했다. 본뜻과 달라도 무조건 안 된다니 그 그물망을 뚫고 쓸 수밖에 없었다. 봉을 못쓰니 몽둥이가 되었다. 몽둥이는 방망이로 섹스는 ‘사랑을 나누다’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한성교 작가는 해삼, 말미잘, 조개 등의 해산물을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로 대체해서 쓰는 데 능통했다. 몇 달간 한성교 작가는 야설계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래도 제재 조치가 내려왔다. 우리 유령작가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또다시 다른 방법들을 개발해 소설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은, 아니 날 것인 야설은 점차 로맨스소설이 되어 갔다. 할리퀸소설처럼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재미있는 점은 주 고객층이었다. 가장 많이 콘텐츠를 받아 보는 이들이 군인과 여고생이라는 친절한 통계가 회사로부터 하달됐다. 군인은 이해됐다. 일반 사병에게는 핸드폰이 주어지지 않으니 아마 윗분들이 보시겠지들.

급기야 회사에선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여고생을 공략하라! 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냥 소리 없이 텍스트로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니 수학의 정석을 풀다 잠깐, 성문종합영어를 들여다 보다 잠깐, 혹은 수업시간에 잠깐 읽을 수 있도록 하라! 여고생들의 입맛에 맞춰 로맨스소설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을 스쳐간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바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야기. 이란의 영화 심의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것을 피해가느라 자신의 영화가 더 재미있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 아, 오해는 마시라. 그렇다고 내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급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 이 사람들아!

나의 흑역사는 사이버수사대가 ‘현대판 음란서생’을 소탕하겠다며 수사를 시작하면서 끝이 났다. 나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은 경찰서에 가서 수사를 받아야 했다. 우린 서로 입을 맞췄다. 인터넷에서 다 베낀 거라고. 내가 쓴 거 아니라고. 우린 바로 훈방 조치되었다. (두부는 먹지 않았다. 죄졌냐?)

하지만 더 이상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없음에 허망함이 컸다. 시나리오 원고료로는 먹고 죽을 수도 없는데,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다시 뛰어야 하나, 고심할 때쯤 일필휘지로 갈겨 쓴 시나리오가 투자사의 투자를 받았고 영화를 찍게 됐다. 내 흑역사를 아는 동료들은 ‘야설작가 출신 감독이 12세 영화로 데뷔를 하다니 수치!’라며 놀려댔다.

그렇다. 인정한다. 나는 저질이다. 야설 나부랭이를 써서 한 때 잘 먹고 잘 살았던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야설 나부랭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명작 영화들이 가위질 당했다는 것을 우린 기억해내야 한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극장에도 걸리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음을, 우린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아니 꼴통 같은 기준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곱씹어야 한다.

묻고 싶다. 미국 간 대통령을 수행하다 알몸으로 여자 인턴을 맞이한 고위관료님과 한밤 대로에서 다섯 번씩이나(!) 음란행위를 했다는 어느 사또 분… 그 분들이 영화나 소설을 보고 따라 했겠는가. 아, 내가 썼던 (제재 받기 이전의, 날것의) 야설을 보고 그랬다면, 와 내가 필력은 있구나 하겠다. 음담패설을 일삼는 나는 가끔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말한다. “니네가
더 저질이야!” 맞다. 영화에 과도한 등급을 매기는 니네들, 사회에 해악을 끼칠 거라 미리 판단하는 니네들, 그리고 grab란 영단어를 알게 해준 니네들, 베이‘베’ 로션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니네들, 니네들이 더 저질이야, 이 사람들아!
bfc